우리 사회의 위치 에너지 작동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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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John Lee

 

-중인 계급, 손수레 하나 장만하는 게 인생의 꿈. 제트엔진 달고 나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어

-어떤 변호사 “변호사 수입 많긴 하지만 너무 고달프다. 할 수 있다면 자신과 결혼하고 싶다”

-서민 자식들이 청춘의 시간과 노력, 고생으로 20대 때워서 적지않은 돈 만지는 게 ‘전문직’

 

 

0. House & Houston
 

밤새도록 벽돌을 손수 날라 쌓으면, 비록 공법 자체가 다르고 인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초고층빌딩 펜트하우스까지는 비현실적이어도 그럭저럭 낮은 2층집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층계 이동의 사다리나 손수레는 건축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 주지만, 결국 벽돌의 위치에너지는 전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가끔 우공의 노력에 감동해 하루아침에 산을 밀고 건물을 지어주는 시청자 아니 산신령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노력만으로는 원천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높이가 있다. 비행기의 순항고도는 지상 10km인데, 노력은커녕 인류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도 땅에서 걸어 올라가는 방식으론 이 높이에 다다르기 어렵다. 로그스케일이 어울리는 이 고도는 제트엔진이라는 완전히 다른 원천기술로 접근해야 한다. 비행기를 처음 만드는 데에 수만 년이 걸렸지만, 한번 만들어진 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10km 높이에 수만번씩 올라가고 있다. 휴스턴에서 발사된 우주 로켓의 고도와 속도는 어떻고. 그들에게는 단순히 지구 저궤도에서 고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속도(delta-V)가 필요할 뿐이다.
 

위치에너지는 권력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권력이 필요했단 것이다. 이 높이를 단순히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거나 땅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이른바 사치품이나 명품, 머니 스웩이다.

 

그런데 실용적으로 비행기의 고도는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공기 저항을 줄이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10km 상공에는 인간을 괴롭히는 폭우나 번개가 없고, 공기 저항이 적어지는데다 기류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항공기로 출장을 가는 사업가들은 그들이 누리는 시간절약과 쾌적함에 관심이 있지, 높이 따위는 고용한 기장들이 알아서 할 문제로 생각한다. 
 

어차피 남는 땅 한적한 곳의 1층집에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지게로 열심히 벽돌을 나른 모범 직원들, 그리고 손수레나 트럭을 마련해서 몇 층 짜리 건물도 올린 전문직들, 전문 장비와 인부를 고용해 초고층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사는 부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10km 고도에 오른 사업가들은 그들의 위치 에너지와 높이조차도,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일한 만큼만 돈을 버는 시스템, 남이 나를 위해 일하지 않는 시스템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 와중에 손수레 하나 장만하는게 인생의 큰 투자고 꿈이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는 생각할 겨를이 없고, 제트엔진은 만들 지식이 없다. 그렇게 중인들의 계급이 고착되어 간다. 중인이라 해도 노비와 상민을 보면 나름대로 꽤 높은 기득권이다.

 

평범하게 벽돌을 쌓은 단층집에서 평생 사는 사람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 우주에 오른 사람의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1.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 희망인 직업
 

NASA에서 몇 달간 가만히 누워만 있는 조건으로 거액의 월급을 제시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그냥 돈을 준다니 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몇 달간 거동을 하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 육체는 엄청난 손상을 입는다.

 

근로처럼 그때그때 노동력이란 상품을 월급과 교환을 하든지, 사업으로 돈을 내가 직접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면, 누군가 큰돈을 주면서 이득뿐인 거래를 제안한다면 거기엔 반드시 숨은 대가가 있다. 약간의 시간을 버렸을 뿐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돈만 벌 수 있지 않다. 근육이 다 빠져버리든 번아웃에 빠져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지든 예상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본인 삶을 설계할 때에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 무형의 삶의 질까지 고려해 선택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는 그런 무형의 대가에 대한 고려가 매우 인색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북해에서 대게를 잡는 원양어선행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북해에서 대게를 잡아 큰돈을 번 사람을 편의점 알바에 비해 강자로 보게 된다. 실제로는 북해에서 대게를 잡아야 할 정도로 내몰린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어떤 변호사는 변호사가 수입이 많긴 하지만 너무 고달프다며 자신은 자기랑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전문직이 아니라 문지기(shutter man)가 좋은 이유는, 고생을 뺀 순수한 과실만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들 역시 아무것도 모를 때 과실만을 보고 고생을 과소평가했기에 그 길에 들어선 것이지만, 마침내 과실을 쥔 채 돌아온 그들의 마음은 어쩐지 예전의 활기찬 모습이 아니다.

 

2. 노동력과 대가의 선형적인 교환
 

모두에게 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졌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편의점 알바 A가 한 달에 대략 120만원을 번다. 그런데 B는 여가보다 돈을 소중히 여겨 주당 80시간을 일했고, 야간 휴일 수당까지 270만원을 가져간다. 한편 주당 120시간을 일하기로 결심한 C는 360만원 이상을 가져간다. 이때 C가 3배 이상을 번다고 해서 A보다 기득권이라 할 수 있을까?

 

A도 자기 시간과 노력을 얼마든지 아르바이트에 배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비록 통장의 숫자로 보이지 않지만 여가라는 무형의 가치가 A에겐 돈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C에게 자동차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여가와 수면의 가치를 상회한다. 양적으론 같은 대가지만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A보다 3배 ‘잘 사는’ C는 괜시리 자기가 기득권이 된 것 같고 더 베풀어야 될 것 같은 부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C에게는 A에게 밥을 살 시간조차 없었고 가끔 A의 자조섞인 비아냥을 들을 뿐이었다.
 

자신의 노동력과 대가를 선형적으로 교환해야 하는 전문직은 기득권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다. 단순히 지불한 가치뿐만이 아니라 포기한 가치까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사다리로 하늘을 날 수는 없다
 

대치동 학부모들은 부부와 자식 인생 모두를 걸고 교육과 학벌에 목을 매는데, 그들이 원하는 구체적인 미래는 무엇일까. 그냥 타이타닉이 침몰해도 가장 위로만 가면 어쨌든 가장 마지막에 죽는다는 막연한 기대일까. 자식이 나보다는 낫게 살기를 바라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어떤 부모는 백일기도를 드리고 어떤 부모는 학원셔틀버스를 자처한다. 성장동력과 희망을 잃고 침몰하는 나라에서 그들의 방황은 애처로웠다. 물론 여유가 되는대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수가 경제적 형편에 맞지 않게 교육을 위해 무리해서 이사왔으리라 짐작되는 대치동이란 생각에서다.
 

한국인의 생활수준은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하층민을 포함한 전체 집단에서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그것이 와닿지는 않는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나거나 출산 붐이 일었다고 해서 나의 행복도가 조금이라도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고 계산에 걸리는 시간을 바탕으로 인구수를 역산해내는 백설공주 왕비의 예를 들 것도 없다.
 

서민과 빈민층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착각만큼이나, 경제문화적 상류층도 상당히 두텁다. 한국 인구의 1%라고 해도 50만명이나 된다. 줄어드는 것은 중산층이지 상류층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정도 인구는 한두 직업군이 독차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그토록 살기 힘들다는 미용사도 최상위권은 연예인 상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김밥천국 이모와 호텔 스시 주방장을 같은 직업군으로 생각하여 억지로 묶어서도 안 된다. 다만 고작 1% 상위권과 극상위권에는 여전히 엄청난 격차가 있다. 서민과 상류층의 격차는 이에 비하면 애교다.
 

문자적 지식도 기술도 없는 이들이 건강한 몸 하나로 하루를 때워서 적지 않은 돈을 만지는 것을 일용직 노가다라고 한다. 일용직 노가다는 최저임금을 뛰어넘는데다가 웬만한 화이트칼라보다 높은 효율로 돈을 벌지만 그들을 기득권이라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실제 가치를 떠나서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통해 무시받는 이미지에 숨은 비용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문자 그대로 하루종일 더운 곳에서 힘들게 몸으로 때운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인정받는 십장과는 다르게 일용직 노가다는 호봉도 쌓이는 기술도 없다. 그리고 노가다로 다져진 몸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없다. 그냥 그날 번 돈이 끝이다. 하루 일하면 하루 벌고, 일을 쉬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루 8시간 일하는 편의점 알바가 16시간을 일하면 돈을 2배로 벌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저버릴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한푼이 아쉬워서 16시간 일을 하고 세금을 떼이고 2배가 못 되는 돈을 번 효율 떨어지는 일을 한 알바를 기득권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가치관에 따라.
 

한편 서민 자식들이 청춘이란 시간과 노력과 고생으로 20대를 때워서 적지 않은 돈을 만지는 것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전문직은 일반 서민들보다는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와 대우를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실질적인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자본을 모으는 징검다리이지 실질적인 상류층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그것을 가지기 위해 뭔가로 ‘때웠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누구나 칠 수 있는 시험을 통해 문턱도 낮아진 과정을 합격하여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당연한 기득권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약3종 고시를 합격한 사람도 물론 되고 난 다음에는 보상이 부럽겠지만,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황금기를 골방에 처박고 난 다음이라는 사실은 쉽게 간과한다. 아무나 처박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니까 부럽지만, 된 사람이 거저 되지는 않았다.

 

일단 성공한 그들은 사다리 없이 힘겹게 기어오른 후에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지형에 사다리를 놓고 자식이 같은 길을 올라오길 바란다. 위에서 누가 당겨주는 방식이 아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학과를 나와서 자식을 경영대에 보내 회사를 물려주는 것은, 그냥 맨땅에서 경영대에 가려는 1세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경영 이전에 중요한 것이 소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은 동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경영한다. 경영학과를 나온 1세대들은 부사장쯤이 한계다. 가끔 대박이 나는 벤처가 있긴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경영을 전공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과에서 배우가 나오지 않고, 일단 외모로 배우가 된 사람이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영화과로 진학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기껏해야 기득권으로 가는 중간 계단이나 1세대쯤이 한계인 구조에서, 당장 눈 앞의 작은 언덕을 높다고 생각하고 허덕이는 이들은 언덕 위의 사람들을 시기하고 끌어내리려고 하면서도 내심 이루지 못한 목표로 여긴다. 그들이 진짜 성벽 안의 사람들이라면 빈민인 자신을 받아줄리는 없으면서도,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서클을 꿈꾼다. 그리고,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는 풍경도 바뀐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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