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실 비치에서’가 보여주는 과거 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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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주현

 

-자기 엄마가 콤플렉스인 남자. 성적 접촉이 두려운 여자. 각자의 콤플렉스가 둘의 중매쟁이

몸은 함께 있지만 각자 상처받았던 과거를 헤매는 이들. 눈앞 상대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져

‘몸에 새겨진 느낌 통해 과거로. 바짝 정신 차리지 않고 그 느낌 따라가면 과거에 살기 십상’

 

 

영화 <체실 비치에서>를 봤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글로 풀어낸 이이야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연기로 풀어낸 이야기는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놓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남주와 여주는 서로 진정 사랑하는 어린 연인이다. 이들은 각자 콤플렉스가 있다. 남자는 기차 사고로 머리가 이상해진 엄마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놀림을 받았고, 그 때문에 늘 주눅들어 있다. 여자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그 때문에 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남자는 이상한 자기 엄마를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여자에게 마음을 열고, 성적 접촉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여자는 사귀면서도 (자기 자신감 부족으로) 성적 접촉을 시도하지 않은 남자에게 마음을 연다. 각자의 콤플렉스가 둘 사이에서 중매쟁이로 작용한 것이다.

 

서로를 끌리게 만든 그것이 결국 그들을 함께 할 수 없게 만든다. 어린 시절이라는 각자의 과거에서 둘 다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서로를 끌리게 만든 그것이 결국 그들을 함께 할 수 없게 만든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 즉 어린 시절이라는 각자의 과거에서 둘 다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첫 잠자리 실패의 상실감이 두 사람을 순식간에 각자의 과거로 끌고 갔다.

 

별안간 여주를 덮친 성적 트라우마에 여자는 뛰쳐나가고, 자신감 부족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남주는 그런 여자의 반응을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받아들인다. 몸은 함께 있지만, 각자 자기가 상처받았던 과거를 헤매고 있는 이들은 결국 눈 앞에 있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현존에 대한 시각으로 이해한 건 근래 부쩍 느끼는 나이듦에 대한 경각심 영향이다. 나이듦의 가장 큰 특징은 자꾸만 현재를 벗어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북토크에서 어느 여성의 질의를 통해 알게 된 요즘 아이들이 지나치게 자기 얘기만 한다는 현재 흐름과 우리 문화가 여전히 자기 억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인식과의 차이 외에도 내가 과거에 머무르려고 하는 또 다른 현상이 있었다.

 

저녁 시간 퇴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 아래로 내려가는데 문득 몸에서 과거 직장인 시절 퇴근할 때 느낌이 확 일어나면서 나를 그때로 데려갔다. 물론, 이 모든 현상을 자각하고 있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얼른 되돌아왔지만, 두려움이 뒤따랐다.

 

‘사람이 이렇게 과거로 가는구나, 몸에 새겨진 느낌을 통해서.. 바짝 정신 차리지 않고 그 느낌 따라 가면 과거에 살기 십상이겠구나.’

 

오래 전에 조금 신기한 경험을 한 적 있다. 팜플렛을 펼쳤는데, 어느 그림이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도저히 인식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니 목도리를 매고 긴 머리를 올린 여성의 뒷모습이었다. 그렇게 한 번 형태를 인식하고 나니 다른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봐도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이걸 알아보지 못하다니, 나 자신이 의아하면서도 신기했다. 인지학에서는 우리가 진실을 본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은 머릿속에 이미 입력해 놓은 형태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한 번 형태가 입력되면, 그것이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슬긋 보고도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대상을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지 작용은 일상을 효율적으로 보내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놓치고 기존 틀에 박히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을 삶의 경험에 적용하면,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의 연인처럼 눈 앞에 있는 인생의 보물을 놓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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