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에게 시기심이 생기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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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지연

 

-교집합이나 공통점이 있을수록 시기심은 더 발생. 적어도 영국 여왕에게 시기심은 생기지 않아

-모두 비슷한 청바지, 비슷한 커피. 현대 사회, 거대한 동창회랄까. 우리가 제법 평등해졌기 때문

-평등의식 기반 시기심은 상대 끌어내려 나랑 똑같이 만들고 말겠다는 더러운 심보로 연결되고

 

 

시기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성관계 내의 독점욕이나 소유욕에 의한 질투심 얘긴 아니다. 시기심을 자극하는 전형적이고 속물적인 것의 대표적인 예로 돈을 들어 이해해 보자.

 

돈이 많은 A가 있다. 돈이 적은 B가 있다. 두 사람 다 돈을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A에겐 그 욕망을 이룰 만한 노력과 조건이 분명하게 있었고, B에겐 그 욕망을 이룰 만한 노력과 조건이 현저히 부족했다고 해보자.

 

여기서 잠깐. 그러니 노오오오력이나 해라 – 이런 얘기 하자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고. 내 맘대로 해둔 설정이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공통점이 있을수록 시기심은 더 잘 발생한다. 동창회를 떠올려 보면 쉽다. 적어도 우리는 영국 여왕에게 시기심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B는 A에게 시기심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게도 같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교집합이나 공통점이 있을수록 시기심은 더 잘 발생한다. 동창회를 떠올려 보면 쉽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었나. 우리는 적어도

 

“영국 여왕에게 시기심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고. 영국 여왕은 시기심이 생기기엔 너무 이상하다고(weird). 그 대목에서 청중은 웃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모두 비슷한 청바지를 입고 비슷한 커피를 마시는 등 거대한 동창회 같은 구석이 있다.”

 

는 점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제법 평등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고는 해도 혈통에 의한 노골적인 계급 구분은 사라졌고, 미디어에선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이자 세계 시민을 늘상 비춘다는 것이다.

 

B는 A와 자신이 (욕망은 비슷해도 노력과 조건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고 노력을 보강할 수도 있고, 실은 걍 체념할 수도 있고,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부족하니까 반성하고 노오오오력이나 하라는 얘기 진짜 아니고,

 

“다르다.”

 

고 생각하는 게 포인트다. 다르다는 걸 정직하게 인지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포기도 체념도 가능한 것이고, 회피와 정신승리에서 때 아닌 창의와 창발이 일어나 대안 생산이 가능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같아지고 싶거나 상대를 뛰어넘고 싶기 때문에 경쟁과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된 시기심, 경쟁심의 건강하고 정석적인 메카니즘일 것이고 우리가 일부라도 긍정할 수 있는 정신승리의 과정일 것이다. 물론 같아지고 싶은 열망이기도 하다. 평등 역시 근대의 중요한 개념임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상황은 똑같은데 만약 B가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 A와 자신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A의 일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A가 하는 일은 별 것도 아니라고. 그러므로 A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또는 A가 많은 돈을 버는 만큼 당연히 나도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한다고.

 

내가 ‘평등의식 기반 시기심’이라고 할 때엔 이처럼 애초에 왜곡된 자기인식과 거기서 비롯된 ‘당위적 욕망(?)’을 일컫는 것이지, 모든 종류의 시기심을 죄악시하는 게 아니다.

 

욕망은 원래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녹록한 것이 아니건만, 이런 부류에겐 누가 대신이라도 노력을 해주거나, 아예 도둑질을 해오거나, A의 밥줄을 끊어서라도 반드시 채워야만 하는 당위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A와 자신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짜왕은 내 딸도 맛있게 먹방할 수 있고, 유튜브 영상 올리는 정도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정말로 뭔가를 이룰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이미 전자 케이스로 승화된 것이고, 분명 노력과 조건이 계속 답보 상태라면(…)

 

다르다는 정직한 인식에서 출발해 같아지거나 뛰어넘고 싶은 열망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를 게 없으니 당연히 같아야만 하는 시기심.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되는데 그걸 끝끝내 못하니까 기를 쓰고 무리수를 둔다.

 

“올바르고 정당하고 마땅한” 욕망이란 무슨 수를 쓰든 나도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상대를 끌어내려서라도 나랑 똑같이 만들고 말겠다는) 더러운 심보로 필연적으로 연결되기 마련이고.

 

평소에 시기심에 대해 언급할 때 설명을 축약해서 그렇지, 바로 정확히 ‘이 시기심’이 너무 싫은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부정하는 씹선비라서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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