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스토리 원형은 일본에서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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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상후

 

-요시카와 에이지, 종군작가로 중국 각지 누비면서 삼국지 신문 연재.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삼국지는 조조에서 시작해 제갈공명에서 끝난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는 소설의 양념 

-황건난, 도원결의, 오관돌파, 적벽대전, 출사표로 이어지는 장엄한 스토리라인은 일본에서 비롯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현재 일본 토쿄 우에노구의 국립박물관에서는 ‘삼국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일본에서 삼국지는 10년 주기로 붐이 일어난다. 마침 2019년은 일중수교 40주년인데 가장 의미 있는 행사가 바로 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에서 열리는 삼국지 특별전이다.

 

삼국지는 엄밀히 말하면 4세기 초 진수가 지은 사서 <삼국지>와 14세기 후반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연의> 두가지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일본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사서다. 위지 동이전 속에 위지왜인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야마타이코쿠와 히미코여왕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히미코는 위나라에 최초의 사절을 보낸 것으로 돼 있어 정사 삼국지는 일본에서도 관심이 높다.

 

삼국지연의를 얘기하자면 일본에서는 자포니즘에 영향을 끼친 거장 카쓰시카 호쿠사이 문하생 카쓰시카 타이토가 그림을 그린 그림본 통속삼국지가 에도시대에 인기가 있었고 쇼와시대에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삼국지연의를 쓴 작가는 상당히 많지만 이 가운데 요시카와 에이지가 가장 대표적이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은 상당히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야모토 무사시>와 <삼국지>다. 에도시대에는 서민의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그리고 쇼와시대에는 일중전쟁으로 인해 삼국지가 널리 보급됐다.

 

일중전쟁 시기에는 다섯명의 작가가 경쟁적으로 삼국지를 집필했다. 이 가운데 제일 발군이 요시카와 에이지로 그는 중국에서 종군작가로 전쟁을 눈으로 보고 각지를 누비면서 삼국지를 신문에 연재했다. 1939년부터 시작된 것이 1943년까지 이어지니 태평양전쟁 시기까지 펜을 놓지 않은 것이다. 에이지는 두 번 종군을 하는데 장강과 한커우작전도 따라가 중국대륙의 풍토와 유구한 역사를 가슴으로 느낀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이렇게 집필한 요시카와의 삼국지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다. 일중전쟁 시기 일본의 독자들은 중국에 파견된 형제들이 싸우는 중국인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중국의 모택동과 장개석은 적이지만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는 일본인에게 심적으로 중국인은 적이 아니었으며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요시카와는 “삼국지는 조조에서 시작해 제갈공명에서 끝난다”고 했다.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도원결의 삼형제는 소설의 양념으로 보면 된다. 삼국지에는 요시카와의 창작이 많이 가미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어머니에게 드릴 차를 고향으로 가져가기 위해 가보로 내려오던 칼을 잃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고향에 돌아갔지만 실망한 어머니는 차를 강에 던져버리는데 이 대목이 바로 창작이다. 또 적벽대전 직전 제갈량이 제사를 지내 동남풍을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요시카와의 기발함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스토리 라인을 만든 것도 요시카와 에이지다. 기본적으로는 중국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따랐지만 인물묘사만큼은 일본인의 취향을 따랐다. 단적으로 도원결의도 그렇다. 이전 판본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의기투합했다는 정도의 건조한 이야기인데 여기에 디테일을 더한 이가 요시카와 에이지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원결의 당시 유비의 어머니가 내온 것으로 요시카와가 묘사한 요리를 재현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원결의 당시 유비의 어머니가 내온 것으로 요시카와가 묘사한 요리를 재현했다. 새끼 돼지를 기름에 삶고 산양의 젓에 야채를 삶은 요리라고 한다. 요시카와 에이지 소설의 세계관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시도 자체부터 아주 흥미롭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가운데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인물은 제갈량이다. 특히 메이지 시대에는 제갈량이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국가에 충성해 분골쇄신하는 제갈량의 충절의 이미지는 당시 국가주의적 정신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고군분투하는 제갈량의 이미지가 일본인에게는 최선으로 받아들여졌다. 러시아와의 전쟁계획을 입안하느라 과로사한 육군대본영의 타무라 이요조를 제갈공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파생돼 영화, 게임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는 삼국연의가 지금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일본이 가진 문화의 힘이다. 황건의 난부터 도원결의, 오관돌파, 적벽대전, 출사표로 이어지는 삼국지의 장엄한 스토리라인이 일본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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