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나의 적이여

<<광고>>



¶글쓴이 : 박석희

 

-나는 싫어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소모되고 지치고 주눅들어. 끄집어내어 이야기하지도 못해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불행과 불편 가져오고 손실 가져오며, 소모시킬지 고민하고 실천할 것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두 글자로는 고백이고 네 글자로는 선전포고. 백년을 함께 늙고 싶다

 

 

내가 사랑하던 여자들은 대부분 내 곁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녀들에게 충분히 관심과 시간을 쓰지 않아서였다. 내 나름대로의 선의와 배려는 그녀들의 성에 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미워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보다. 나는 멍청이다. 나는 가치 있는 것을 어디다 써야할지 전혀 모르는 인간이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소모되고 있었고 잔뜩 지치고 주눅들어 있었으며 그것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온통 자신의 삶 속에 구현한 듯한 추악한 나의 적과 퇴로를 열어두지 않고 싸우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헛되고 사사로운 싸움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으니까 그녀들은 얼마나 나를 따라 지치고 힘들었을까.

 

나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헛된 것과 실질적인 것의 경계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것과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사이에서 서 있었다. 나는 무(無)였고, 허(虛)였으며 공(空)이었고 폐(蔽)였다. 어느새 나는 내가 싸우던 것들과 너무나도 깊이 관계되어 버려서, 나는 더 이상 그들과 떨어질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나의 적을 두고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이 작은 교란과 방해들 위에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쁘고 설레어 음모를 꾸미고 공작하고 실현한다.

 

적인 당신을 위해서는 비싼 물건을 할부로 구입하는 것처럼 내 평범한 하루에서 일정한 시간을 잘라내어 쓸 수 있었다. 길게는 하루에 한 시간씩, 나는 당신의 파괴와 손실, 피로와 불행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할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한 달이면 30시간, 1년이면 365시간.

 

나는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불행을 가져오고, 불편을 가져오고, 손실을 가져오며, 당신을 소모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안에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것이다. 방학시간표를 설레는 마음으로 짜는 어린 아이처럼 나는 한 시간을 잘라내어 오직 당신에게 할애한다.

 

어떻게 하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힘들고 불행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의 공작이 당신이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게 만들고 당신을 피로하게 만들어 당신의 삶을 소모시킬 수 있을까. 나는 당신이 작은 교란과 방해들 위에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쁘고 설레어 음모를 꾸미고 공작하고 실현한다. 당신은 내 삶에 살아갈 이유를 준다.

 

그 한 시간 속에서 몇 분을 생각에, 몇 분을 행동에 할애할지를 생각한다. 3분의 2를 생각에, 3분의 1을 행동에 투입한다면 나는 1년 중 240시간을 당신을 괴롭히는 계획을 세우는 데 쓰고, 120시간을 당신을 실제로 괴롭히는 데 쓰는 셈이다. 내 작은 행동이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당신을 성가시게 할지를 생각하며 설렌다.

 

나는 당신이 나의 존재와 악의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 안다면 뒤가 켕겨서 나의 존재만으로 당신은 힘들고 지칠 것이고, 모른다면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당신을 기습하여 당신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끼치는 것과 당신을 놀라게 하는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다.

 

그대여, 나는 그대의 감정과 그대가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하다. 그대가 기쁘고 행복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하나 망가뜨리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그대가 슬프고 불행하다면 수많은 당신의 약점의 구멍을 파고들어 당신을 더 깊이 쳐박아버릴테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찰하고 싶으며 언제나 그대가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고 그대의 안부를 물으며 꿈에서도 그대를 보고싶을 것이다. 나는 그대가 좋다. 그대가 바로 내 옆에 있어도 그대가 몸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나는 그대만을 떠올리며 힘을 낼 것이다. 그대는 이제 내 삶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두 글자로는 고백이고 네 글자로는 선전포고다. 나는 이런 당신을 두고 백년을 함께 늙고 싶다.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