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이기고 외교에서 패배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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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일본군이 모스크바까지 밀고온 것도 아니고 지금 전선은 만주. 승자도 패자도 없다”

-“배상금 요구는 무리. 전쟁이 재발한다면 일본은 엄청난 전비(戰費)를 더 써야 할 것”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으로 중화질서에서, 1905년 러일전쟁으로 서구 지배 탈피

 

 

1905년 8월 9일부터 미국 동부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러일 회담이 시작되었다. 일본 대표는 고무라 주타로 외상, 러시아 대표는 전 재무장관 비테였다. 회담은 15회 진행되었는데 일본이 반드시 관철해야 할 사항은 영토 할양과 전쟁배상금 그리고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은 러시아가 거의 승낙하였다. 하지만 전쟁 배상금 문제는 처음부터 난항에 빠졌다. 일본이 전쟁배상금을 요구하자 러시아의 비테는 “러시아는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 전쟁 배상금을 준 적이 없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버티며 “일본군이 모스크바까지 밀고 들어 왔으면 몰라도 지금의 전선은 만주”라면서 “이곳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맞섰다.

 

8월 12일에 니콜라이 2세는 비테에게 일본의 요구에 굴하지 말고 교섭을 중단하라고까지 지시했다. 다시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루스벨트는 일본에게 “전쟁배상금 요구는 무리이며, 만일 전쟁이 재발한다면 일본은 지금보다 엄청난 전비(戰費)를 써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고, 러시아에게는 “전쟁이 계속된다면 시베리아 전체가 일본군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미국의 T.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을 중재해 포츠머스 조약을 성사시킨 노력을 평가받아 190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러자 일본은 점령하고 있는 사할린의 북부 지역을 돌려주는 대신 배상금 12억 엔을 요구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비테는 AP 통신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사할린 북부를 반환하는 댓가로 12억 엔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최대한 양보했다. 일본이 배상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제 여론은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고무라는 8월 29일에 열린 최종 회담에서 전쟁배상금 없이 사할린 남부를 요구했다. 비테는 일본의 제안을 고심에 찬 표정으로 수용하면서 사할린 섬의 분계선은 북위 50도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테는 회담장 밖으로 나오면서 “평화다! 일본이 양보했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랬다. 러시아는 전쟁에선 일본에 패했지만 외교에선 이겼다.

 

<뉴욕타임스>는 “포츠머스는 러시아의 외교적 승리이다. 외교사에서 전례가 없다.”고 평가했다.

 

9월 5일에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러시아는 일본이 대한제국에서 정치상·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월한 이익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본이 대한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취하는 데 이를 저지하거나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제 2조)

 

그런데 러시아는 “대한제국 황제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는 문제로 일본과 논란을 벌이다가 “일본이 장래 대한제국에서 취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조치가 그 주권을 침해하게 될 경우에는 대한제국 정부와 합의한 후 집행할 것을 성명한다.”는 내용을 회의록에 기입하는 선에서 타결지었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고 재론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2. 러일 양군은 요동반도 이외의 만주 지역에서 철수하며 만주에서 청나라의 주권과 기회균등 원칙을 준수한다.

 

3. 러시아는 청국의 동의를 조건으로 러시아의 요동 반도 조차권과 장춘-여순 간 철도를 일본에 양도한다.

 

4. 러시아는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섬 남쪽을 일본에 양도한다.

 

5. 동해, 오호츠크 해, 베링해의 러시아 연안 어업권을 일본에 허용한다.

 

이로써 아시아의 변방이었던 일본은 세계열강 대열에 우뚝 섰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으로 중화질서에서 벗어났고, 1905년 러일전쟁으로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는 이렇게 적었다.

 

“쓴 결과를 가장 먼저 맛본 것은 조선이었다. 일본의 발흥은 조선의 몰락을 의미하였다.”

 

결국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의 희생물이었고,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은 시간문제였다.

 

덧붙일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일 중재 덕분에 190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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