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론과 페미니즘과 여성성(女性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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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식

 

-판도라의 상자를 연 ‘설거지론’. 우리 사회가 이 논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

-우리나라 여성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로 표현되는 여성성의 교육 기회 상실한 상태

-인간은 실험실에 가두고 변수를 통제해 검증할 수 없는 존재. 전통윤리 부인이 진보?

 

 

[새론새평] 설거지론과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성(女性性)

이 글은 필자가 지난 11월 17일 대구 <매일신문>에 기고한 [새론새평] 칼럼의 일부 표현을 바꾼 것입니다. <편집자>

 

젊은 시절에 매력적인 남성과 마음껏 즐기던 여성들이 점차 성적 매력을 잃게 되면 공부와 취업에만 매달려 이성 경험과 성적 매력이 없는 순진한 남성을 상대로 결혼, 안락한 삶을 누린다. 남편과 아이에 대한 애정도 없고 살림도 등한시한다. 남성이 여성의 무책임한 과거를 씻어준다는 의미에서 ‘설거지’란 표현이 등장했고, 그런 남성들을 ‘퐁퐁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설거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 사회가 이 논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 이 논란이 잠잠해진다 해도 실제 내연(內燃)하는 갈등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의 본격 폭발을 앞두고 지금 숨 고르기를 하는 단계이다.

 

설거지론은 ‘공짜는 없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원칙을 확인해준다. 논란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결혼 시장에서 몸값을 높게 매겨서 결혼 계약을 맺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기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사기 결혼에 따른 후유증이 지금 설거지 논란의 본질이다.

 

모든 사기 행위의 근저에는 공짜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공짜 심리는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얻는다는 부도덕성과 함께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과학’을 부정하는 심리이다. 설거지론은 이 공짜 심리가 페미니즘이라는 외피를 쓰고 무리를 거듭한 부작용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여성들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훈련받아야 한다.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 훈련을 통해 갖춰지는 ‘능력’이다.

 

설거지론에서 여성을 옹호하기 위해 대는 핑계가 ‘사랑’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생기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이 불성실한 가정생활의 원인이라면 그건 거짓 사랑을 연출한 사람의 책임이다.

 

설거지론 당사자인 여성들이 상대 남성에게 ‘결혼 이후 집안 살림도 하지 않고, 섹스에도 응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돌보지도 않고, 다른 남성과 놀아날 것’이라고 말했을 때에도 그 결혼이 성사됐을 것인지 따져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성과 도덕성의 문제이다.

 

설거지론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여성성의 교육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성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여성성이 표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갖추게 되는 특성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페미니즘은 이런 여성성을 죄악시한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여성을 가부장적인 질서에 옭아매는 요소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대다수 여성을 불행하게 만드는 논리이다.

 

전통 윤리를 무조건 부인하는 것이 진보일 수는 없다.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경험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실험실에 가두고 변수를 통제해서 단기간에 검증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청소년들의 ‘꿈’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앞자리를 차지하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자녀들이 이 길을 간다고 하면 말리는 부모들이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아이돌이나 스포츠 스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훈련이 훨씬 중요하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여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지금 페미니즘은 이 평범한 대부분의 여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교육 훈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설거지 문제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청소년 시절부터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는 훈련을 전혀 시키지 않은 결과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악랄한 여성 혐오요, 청소년 학대이다. 자의식이 이상 비대화하고 정치 관종질에 익숙해진, 그렇게 살아도 인생에 지장 없는 극소수 페미니스트들의 허영심 충족과 사회적 위상 확보를 위해 평범한 대다수의 여성이 희생당한 결과이다.

 

에리히 프롬은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말한다. 여성들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훈련받아야 한다.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 훈련을 통해 갖춰지는 ‘능력’이다. 자신과 가정을 구원하고 싶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설거지론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진정한 화두는 이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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