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과 호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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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이승만, 김성수, 신익희, 조봉암, 조만식, 다섯 분 중심으로 대한민국 건국사 다시 쓰여야

-가장 중요한 두 분은 이승만과 김성수. 해방 정국 쟁점은 이화장과 인촌 사랑방에서 조정

-임정계 신익희, 공산당계 조봉암, 배신자 취급 받았지만 역사는 그들이 옳았음을 보여 줘

 

 

건국의 아버지들(1)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신 조상들,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조상들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무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감사할 분들은 실은 무척 많습니다. 우리 앞 세대 조상들 모두가 감사해야 할 분들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다섯 지도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승만(1875년생), 김성수(1891년생), 신익희(1894년생), 조봉암(1899년생), 그리고 조만식(1883년생) 선생이 그들입니다.

 

1948년 건국 시점에 이승만은 74세, 조만식은 66세, 김성수는 58세, 신익희는 55세, 막내 조봉암은 50세로 가장 연세가 많은 이승만보다 24살 어린 사람이니 아들뻘입니다.

 

가장 대중적 지지가 높았던 이승만(사진 오른쪽)과 조직된 전문가와 엘리트 집단을 대표하는 김성수, 이 두 분이 모든 문제를 조정하는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두 분은 이승만과 김성수입니다. 모든 쟁점은 이화장과 인촌 사랑방에서 조정되었습니다. 한민당 사람들이 미군정의 행정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인촌 사랑방에서 조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 지지가 높았던 이승만과 조직된 전문가와 엘리트 집단을 대표하는 김성수, 이 두 분이 모든 문제를 조정하는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의 민주 정부가 보다 넓은 기반 위에 서야만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임정계에서 실력 있고 야심만만한 신익희에게 특별히 권유하고, 공산당계의 고참 지도자이면서 비주류로 밀려나 있던 조봉암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하면서 설득하니, 두 분은 과거의 동지들과 결별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신익희와 조봉암은 물론 과거의 동지들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았지만, 역사는 그 분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손잡고 진정한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어 보라는 미국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인 그 분들의 결단으로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주요한 독립운동 세력이 참여한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임정계 신익희(사진 오른쪽)와 공산당계 조봉암은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았지만, 역사는 두 분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 줍니다.

 

신익희가 한독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사퇴한 시점과 조봉암이 전향한 시점이 같은 1946년 6월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 이승만 박사의 정읍 발언이 나온 것 역시 6월이라는 사실도 우연이 아닙니다. 단독 정부 수립의 불가피성을 언급한 연설을 이승만 박사가 정읍에서 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순회 강연하는 여러 도시 중에서 정읍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읍에는 나중에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신 백봉 라용균 선생 – 역시 한민당의 주요 멤버이고, 라종일 전 우석대 총장의 부친이시죠 – 같은 지도자도 있었지만, 역시 한민당의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1946년 2월 8일에 소련 군정이 북한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장으로 35살의 김일성을 올려서 지금까지 76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김일성 정권을 세웁니다. 그리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북한식 토지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소련, 북한과는 어떤 협상도 무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분들의 판단이 옳았고, 그런 판단을 도운 미국 정보기관의 역할도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공산 혁명을 피하여 월남하여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해 준 서북인(西北人)들의 역할도 있었고요.

 

북에서 반동으로 몰리거나 땅을 잃은 1백만 명 이상이 월남해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는데, 조만식 조선민주당 당수는 그 분들을 대표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건국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평양에 남아 있다가 살해당하신 조만식 선생을 왜 다섯 손가락 안에 넣어야 하는가? 북한에서 반동으로 몰리거나 땅을 잃은 사람들이 100만 명 이상 월남했습니다. 이 분들이 모두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는데요, 그 분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조선민주당의 당수 조만식 선생을 넣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다섯 분, 이승만, 김성수, 신익희, 조봉암, 조만식, 이 분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가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섯 분이 다른 견해로 토론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답고 뜻이 깊고, 극적이고 또 교훈적이라서 후손들에게 가르칠 만한 역사가 될 것입니다.

 

<리스트>

대한민국 건국과 호남(1)

대한민국 건국과 호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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