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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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87년 대선, 88년 총선 결과 여소야대되면서 국회에 협의제적 의사진행 체제 제도화

-문 정권, 거대양당 중심 대결구도 복원. 중간정당 소멸하며 ‘양극화된 양당제’로 퇴행

-향후 양극화정치는 시민사회에도 양극화된 운동동원 심화시킬 것. 공동체 붕괴 위험

 

 

1. 시민 분열의 양극화 정치 대신 연합 정치의 길 열자

 

1)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는 협의제와 다수제의 혼합 체제
1987년 대통령 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등장하면서, 국회는 협의제적 의사 진행 체제를 제도화했다. 1990년 삼당 합당을 통해 정치 전반을 다수 지배로 운영하고자 하는 역전 시도가 있었지만, 1992년 총선에서 다시 여소야대가 됨으로써 협의제 전통은 지켜져 왔다.

 

2007년까지는 국가-시민 사회, 행정부-입법부, 여-야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었고, 이 체제는 여야를 넘나드는 연합 정치, 시민운동의 성장 그리고 당정 분리를 통해 유지되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야당으로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가능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2) 2008년 이후 양극화 정치 시대로 급변
이명박 행정부와 18대 국회에서 ‘입법 100일 작전’과 한미 FTA 및 종편 관련 ‘입법 전쟁’이 나타나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조사로 인해 여야의 전면전과 의회 밖 촛불 집회가 터져 나왔다. 야당의 반대와 시민 사회의 항의가 결합된, 이른바 ‘이중의 정치 사이클’이 본격화되었다.

 

이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국회 선진화법 체제’가 등장했다. 이는 집권당 중심의 다수주의와 소수당 중심의 협의주의를 재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의안 및 예산안 자동 상정, 패스트트랙 등 다수당의 요구에 직권 상정 제한과 필리버스터 등 소수 정당의 비토권을 인정하는 ‘정치적 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통진당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 내내 국회 선진화법 체제는 유지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선진화법 체제에 대한 대통령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열렬 지지자를 동원한 정치, 그리고 뒤이은 청와대의 공천 개입에 의해 기존의 당정 분리 체계 또한 붕괴되기에 이르렀는데, 그 부작용으로 당이 분열하고 20대 총선에서 패배로 이어졌다.

 

진보적 대중 동원과 보수적 대중 동원의 본격적 경쟁 체제는 ‘양극화 정치 – 양극화 사회 – 양극화 시민’을 강화시키는 진영 대립의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3) 연정의 전기가 될 수 있었던 2016년 촛불 집회의 특별함
박근혜 정부는 촛불 집회와 탄핵 동맹의 출현으로 붕괴되었다. 친박 공천을 통한 대통령의 역전 시도는 20대 총선의 참패와 다당제의 등장과 함께 좌절되었고, 20대 국회에서 협의주의의 정치 틀은 회복되었다.

 

이때의 촛불 집회는 진보는 물론 상당수의 보수 시민이 참여한 “사실상의 사회적 대연정 체제”였다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 집권당 내 상당수가 탄핵 정치 동맹에 가담하면서 20대 국회 전반기는 “사실상의 정치적 대연정”이 실천되었다. 이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합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4) 문재인·민주당 정부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하나는 탄핵 정치 동맹을 유지하며 구체제 개혁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길(협의주의 강화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탄핵 정치 동맹을 붕괴시키고 여야 일대일 체제를 복원해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는 길(다수주의로의 퇴행의 길)이다.

문재인·민주당 정권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한편, 제3당(국민의당)에 대한 전면 공격을 통해 호남을 탈환하고, 적폐 청산을 앞세워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구도를 복원했다. 2018년 지방 선거를 거치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중간 정당이 소멸의 길로 접어들면서 한국 정치는 전보다 더 나빠진 ‘양극화된 양당제’로 퇴행했다.

 

5) 더 강화된 청와대 비서실 정부의 등장
민주당과 청와대 사이의 관계는 ‘당정 분리’에서 ‘당정 통합’으로 전환되었다.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를 통해 집권당을 통제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에 성공했고, ‘비서실 정부’ 체제가 다시 등장했다.

 

그에 따라 여론은 다시 적대적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고, 보수 태극기 집회가 대중 동원에 성공했다. 이전까지는 야당과 사회 운동의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진보적 대중 동원이 시민 사회를 주도했으나, 이제는 그에 대한 일종의 ‘대항 모델’로서 보수적 대중 동원 또한 강력한 동원력을 갖게 되었다.

 

진보적 대중 동원과 보수적 대중 동원의 본격적 경쟁 체제는 ‘양극화 정치 – 양극화 사회 – 양극화 시민’을 강화시키는 진영 대립의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감염병 비상 시국 때문에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향후 양극화 정치는 시민 사회 안에서도 양극화된 운동 동원의 양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치만이 아니라 공동체 또한 붕괴될 수 있는 위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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