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넷플릭스의 또 다른 한류 드라마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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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현

 

-<오징어게임> <지옥> 등 잇단 넷플릭스 드라마 희소식 듣고도 씁쓸함이 앞서

-음울한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현상은 세월호 사건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추측

-웃음을 추모 방해하는 금기로 여기는 한, 아이들의 미래는 우울에서 못벗어나

 

 

넷플릭스의 드라마 <지옥>이 <오징어게임>에 이은 기대 유망 콘텐츠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역시나 반가움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스토리를 엮는 한국인의 실력이 도약하는 건 좋지만, 히트 칠 만큼 주목받는 내용들은 왜 이렇게 우울하고 음습한 분위기 일색일까 싶어서다.

 

이런 성향이 ‘한’과 ‘신파’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 측면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과 신파와 정반대로 특유의 ‘흥’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전통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스토리에서 이렇게 우울하고 음습한 분위기가 도드라지는 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타임라인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이냐”는 어떤 국제적인 조사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여러 번 떴다. 가족이나 직업 또는 친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한국은 물질적 환경을, 그리고 과반 이상의 한국인 응답자가 오직 물질적 환경을 꼽았다는 조사 결과였다.

 

가족은 건강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로 대변되듯, 각자에게 가족은 성역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여겨지는 통상 관념과 비교하면 의아한 결과다. 한국 사람은 원래 가족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일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역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인 것은 아닐까?

 

그 근거 역시 대중적인 스토리 콘텐츠에서 찾을 수 있다. 친정에서 자고 오기 시작한 건 내가 이사하고 나서인 올해부터인데, 그러면서 놀란 발견 가운데 하나가 드라마다. 엄빠는 7시 정도부터 시작하는 공중파 일일 드라마를 재미있든 없든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처럼 성실하게 틀어 놓고 보는데, 오랜만에 그런 드라마를 본 나는 깜놀했다. 한 드라마가 끝나 채널을 돌려 다른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내용이 비슷하다.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 숭고하게 여기는 정서가 더해지면서 최근 한국인의 마음은 음울하고 우중충하게 뒤덮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시간대 오랜 전통처럼 가족 간 갈등이 주요 테마인 건 여전하지만, 갈등의 내용과 양상이 이전과 전혀 다르다. 가족 사이 재산을 둘러싼 음해와 모략인 것이다. 막장의 수위도 이제는 지켜야 할 선이란 건 안드로메다로 영영 달아간 것인지 친형제자매도 죽이려고 안달인 내용도 있었다. 그런 음해와 모략 사이 사이를 잇는 감정은 분노와 복수심이고. 공중파 시청률이 예전같지 않다지만, 왠지 오늘 회자되는 그 조사 결과와 얼추 들어맞는 것 같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보다 건강, 건강보다 돈.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는 건 비교적 최근의 변화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처럼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는 가족 사이 갈등을 풀어내는 걸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삼았지만, 그 분위기를 채우는 감정은 분노와 복수심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훨씬 가볍고 화기애애했다. 대발이 어쩌고 하던 드라마와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게 너무 오래됐다면, <넝쿨째 들어 온 당신>도 있다.

 

넝쿨째가 2012년에 방영됐는데,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후로 서서히 그런 분위기의 이야기가 사라져 지금에 이른 것 아닌가 한다. 심지어 코빅만 겨우 명맥을 이을 뿐, 티비에서 코메디도 사라졌다. 어쩌면 세월호 사건이 이 현상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 충격적인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런 종류의 일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유럽에서는 테러 집단에 의해 시내에서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가 벌어졌고, 일본에서는 지진과 해일 같은 대처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미국도 9.11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었고.

 

그러나 그런 불행이 겪었다고 해서 진지하고 무겁기를, 때론 죄책감을 서로에게 무언의 압박 같은 비언어적 시그널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몇 년 후 한국 사회를 뒤덮은 미투 폭로로 몇몇 유명인의 자살이 있었고, 그 뒤 노회찬, 박원순 등 그런 자살이 몇 년 간격을 두고 계속 이어졌다.

 

음울하고 우중충한 정서와 분위기는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 뭔가 숭고하고 용감한 일로 여기는 정서가 더해지면서 최근 한국인의 마음을 뒤덮은 것이랄까. 그런 일들에 대해서 각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여겨지는 분위기까지.

 

프레드릭 베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녀는 그날 밤 로에게 들은 이야기, 끔찍한 인간들이 서로에게 저지를 수 있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짓과 전쟁이라는 미친 짓에 대해 생각했다. 그 모든 일에도 로가 다른 사람을 웃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산을 넘어 도망치는 동안 그녀 부모님이 유머야말로 영혼의 최후 방어선이라고, 웃는 한 살아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은 어이없는 말장난과 방귀 얘기를 통해 절망에 반항했다.”

 

웃음과 농담이 애도와 추모를 훼방하는 금기로 여겨지는 한, 자살이 가장 용감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한, 아이들의 미래는 분노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족과 친구보다 돈이 먼저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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