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진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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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20년 넘는 세월을 한국사와 한국인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 실체적 진실 탐구  

-한일 합병부터 해방 직전까지 주요 사건-장면들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

-역사 앞에 선 진명행 작가의 첫 출간을 축하하며 시민 사학자로서 장도를 응원

 

 

지지난 토요일 오전 제2자유로 장산IC 고가 아래 족구장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의 진명행 작가님. 그동안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인연으로 상호 선생과 대표로 호칭해 왔으나, 이젠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을 지은 저자로서 ‘작가’란 호칭이 더 어울린다. 어딘가로 향하던 길이 마침 그 길이라 잠깐 들러 갓 출간한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을 건넨다.

 

진명행 작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사와 한국인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 왔다. 특히 고대사부터 조선을 거쳐 일제 시대와 6.25 직전까지의 근현대사 부분에 관한 한 사학계뿐 아니라 심지어 조선·동아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 우파 정치권마저도 불편해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진실과 사회적 양심에 가차 없는 메스를 들이대 왔다.

 

그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성과 실체적 진실에의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민족’ 또는 ‘겨레’를 앞세운 집단주의 경향의 무의식, 가공(架空)된 신화로써 형성해 온 ‘한민족’ 정체성, 거기에 내재된 오류와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이영훈 교수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이후 박해에 가까운 시련을 겪어 온 ‘실증주의 사학’은 여전히 강단에 서지 못하거나 퇴출당해 왔다. 시련은 현재 진행형이고 문재인 정권 하에서 언론 방송과 시민 단체들이 앞장서 ‘토착 왜구’로 낙인찍고 ‘마녀사냥’까지 하는 현실 앞에 진명행 작가도 정면으로 마주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도 진명행 작가의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양문출판사 간)이 출간됐다. 진명행 작가는 시민 사학자이다. 이영훈 교수 등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이면에는, 그들의 선구적 헌신과 희생에 힘입어 진짜 한국 근현대사를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싹텄다. 토착 왜구란 혐오성 낙인이 판을 칠수록 시민들은 오히려 조선과 ‘한민족’의 미화되고 부풀려진 역사마저도 일제 시대 총독부와 일본인들에 의한 근대 국가로의 이행이었다는 진실을 불편해할 수만은 없었다.

 

정직한 시민 의식은 그렇게 역사의 진실과 사회적 양심으로 다가섰다. 그야말로 시민 사회의 자생력이고 국가 공동체를 살아 있게 하는 시민 자치의 원동력이다. 진명행 작가의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이야말로 그 발로의 축적된 성과물인 셈이다.

 

진명행 작가의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은 사회적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정직한 시민 의식의 축적된 성과물이다.

 

1905년 을사조약에 이은 1910년 8월 29일 이씨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칙령을 내린다.

 

“허약함이 누적되고 피폐가 극도에 달하여 도저히 회복의 가망이 없으므로, 일본에 대임(大任)을 맡기고자 하니, 신민들은 공연히 소란을 피우지 말고 이에 따르기 바란다.”

 

조선의 신민들은 충직하게 황제의 명에 따랐다. 먹고 마시는 일상은 변함없었고 유흥가의 흥청거림은 왕국의 존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는 “합병 조약이 발표되자 주변국 사람들은 조선을 위해 비통해하는데, 조선인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고위 관리들은 더구나 날마다 출세를 위한 로비를 하고, 새 조정의 영예로운 벼슬을 얻고자 분주하게도 즐겼다”고 그의 논설 <조선 멸망의 원인>에서 탄식했다. 이 책의 첫 꼭지 ‘1. 조선이 멸망하는 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서두에 나오는 부분이다. 가슴을 후벼파는 구절이다.

 

그러나 그 기시감은 100년이 훌쩍 넘어선 지금에 와서도 여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직접 개입된 ‘대장동 게이트’를 둘러싼 정치권과 법조계, 관료들과 언론계, 심지어 민간 대기업들까지 개입되어 수백억을 넘어 수천억씩 해먹었으며 그 규모가 몇 조에 이른다는 뉴스에 와닿는다. 대한민국이 중공이나 북한에 합병되면 그 체제에서 또 권력과 출세를 찾고도 남을 자들이다.

 

이 책은 한일 합병 시기부터 해방 직전까지 일제 시대 스물다섯 개 주요 사건과 장면들을 그림 기법으로 말하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에 반하는 일체의 동정과 양보도 허용치 않는다. 한두 번 더 읽어야겠지만, 한 번 훑어 읽는 장면 곳곳이 충격적이고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사실, 초중고뿐 아니라 대학 강의실과 동아리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교양이 전면 부정당하는 현실이 마냥 흔쾌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겠나.

 

인류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대규모 인명이 희생된 큰 사건 뒤에는 반드시 민족주의가 있었다. 양차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홀로코스트, 중국과 베트남의 공산 혁명, 6.25 전쟁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더러는 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족 간 전쟁까지 치러야 했던 나라들의 민족주의를 ‘피해자 민족주의’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이나 독일의 민족주의와 지향점이나 목적만 달랐을 뿐, 모두 배타적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고 이영훈 교수는 지적한다.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고,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목적으로 국가가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활용해 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민족주의란 ‘우리가 남인가?’하는 연고주의에서 출발한다. 작게는 지연이나 혈연, 학연을 기반으로 한 연대 의식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고, 이것이 국가로 확대되면, 국민은 사라지고, 민족이 대신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런 뒤에 법통과 정신을 계승, 동포애, 민족의 단결 같은 시대착오적이고 훈구적인 단어들이 나열된다.

 

이런 말들이 강조될수록 개인의 자유와 개성, 사고의 다양성은 말살되고, 민족이나 국가 같은 전체의 논리가 개인을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얘기만 나오면, 모든 언론이 일어나서, 거두절미하고, 벌떼같이 사람을 매장시켜 버리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토론은 사라지고, 거대한 담론 아래 침묵을 강요하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간다.

 

진명행 작가의 냉정한 역사 인식을 통해 정리된 이 한 권의 책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러나 이 책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불편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역사는 그저 역사로 남겨두면 그뿐이다. 다만, 그 전제는 ‘정직’과 ‘양심’이다. 그것을 충족시키는 조건은 실체적 진실, 그리고 사실 관계에 대한 다면 다층적 검증과 확인이다.

 

강단에서는 그것을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정의한다. 실증적 역사 이해를 절대화할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조선과 일제시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의 해방 전후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그 유효성을 부정하는 자들이야말로 역사의 배신자들이다.

 

정직으로써 역사와 마주하는 것마저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슬퍼서 더 분개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슬픔과 분노를 딛고 역사 앞에 선 진명행 작가의 첫 출간을 축하하며 시민 사학자로서의 장도(壯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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