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선조와 임진왜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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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아린

 

-조선은 북방에 정예군 배치, 남쪽은 성곽 보수, 수군 화력 중심으로 전쟁준비

일본군 침략 규모가 크리라 예상했지만, 17만 최정예 대군일 줄은 예측 못해

-전쟁 초기 원균의 패배로 방어 전략 박살나. 일본군은 빠르게 조선 침공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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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국방 체계는 크게 북쪽 이민족의 방어와 왜구의 방어로 나뉘어졌다.

 

2. 한국 역사에서 북방 민족의 침입은 꾸준히 문제가 되었고, 조선의 전 왕조 고려는 몽골 등에 전역이 꾸준히 유린된 역사가 있었다. 이 역사에서 국가를 방어하고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 게 조선의 태조 이성계였다.

 

3. 그래서 조선의 큰 성은 주로 북방에 많이 지어졌다. 조선의 가장 큰 고민도 북쪽을 어떻게 방어하느냐였다.

 

4.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은 북방에서 꾸준히 부족들을 통합하던 청 태조 누르하치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일본군의 침략을 막을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5. 누르하치의 규모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 임진왜란 때 누르하치가 “조상의 나라를 돕겠다”며 팔기군을 보내 주겠다는 제의도 두 번이나 했다.

 

6. 그래서 조선은 북방에 정예군을 남겨 두고, 남쪽에는 성곽을 보수하고, 수군의 화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준비했다.

 

7. 일본군과 직접 상대해야 했던 경상 우수군의 규모가 제일 컸고, 화력도 좋았다. 조선 조정도 여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8. 그런데 일본군과 직접적으로 싸워야 하는 경상 우수군의 최고 사령관에 원균이 부임하면서 조선의 전쟁 방어 전략은 근본부터 박살나기 시작하는데 ㅡ

 

•원유철이 원균의 후손이다. 그래서 원유철은 욕 먹을 때 남들이랑 좀 다르게 욕 먹는다.

•조선의 큰 성이 궁금한 분은 평양성(성벽 높이 9m), 정방산성(성벽 높이 10m), 영변읍성(성문에 들어간 쇠만 6t), 경성읍성(성벽 높이 9.6m), 함흥성(이성계 본진), 안주읍성(살수대첩 장소)을 검색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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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왕조는 일본군의 침략 규모가 꽤 클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17만 명이나 되는 최정예 대병력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2. 당장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역사를 봐도 바다를 건너 수십만이 상륙해서 공격한 사례가 별로 없다고 한다.

 

3. 특히 한반도에 바다를 건너서 왜군의 대병력이 온 것은 거의 1천년 전 백제 멸망 때 지원군이 온 것 말고는 사례가 없었다.

 

선조의 인재 픽이었던 윤흥신은 명종 때 아버지 윤임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지만 선조가 사면하고 무과에 급제해 다대진 첨사로 부임, 800명의 병사를 이끌고 19,000명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4. 선조는 을묘왜변에서 왜군과 싸워 이겼고 녹도 일대에서 왜군과 싸워 이긴 군사 전문가 전라우도 방어사 변협을 불러 가능성을 물었지만 변협도 “걔네 1척에 100명밖에 못 타서 100척이 와도 1만인데요?”라고 대답했다.

 

5. 일본이 임진왜란 때 세운 해외 원정 병력 동원 기록은 250년 뒤 크림 전쟁에서 영프오 연합군 30만이 크림 반도에 상륙하면서 깨진 기록이라고 한다.

 

6. 일본은 거의 7년간 조선 침략을 준비했고, 선조와 조정은 1년 남짓 준비했다.

 

7. 200년 내전을 겪으면서 단련된 일본의 최정예 군대가 조선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8. 선조와 조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군 4,5만은 언제든 갈아 버릴 수 있는 방어 준비를 했다. 실제로 조선 침공 1년에 일본군 4,5만이 갈려 나가고 추가 병력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9. 일본의 대병력이 상륙하러 오더라도 바다에서 함포를 동원해서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 선조는 경상 우수군에 집중하면서 전쟁을 준비했다.

 

10. 그런데 임진왜란 전쟁 발발. 바다를 가득 메운 700척의 일본 군선을 본 경상 우수사 원균은 본인이 탈 판옥선 1척 빼고는 전부 배에 구멍을 내서 수장시키고 무기는 바다에 던져 버렸다.

 

11. 17만의 일본군은 피해 없이 조선에 상륙하고, 현실의 지옥,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6)

1. 원균이 셀프로 부순 판옥선의 숫자는 70~100척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참고로 이순신이 옥포 해전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수군 승리를 했을 때 이순신 함대의 판옥선 28척이었다.

 

3. 한산 대첩에서 이순신이 이끈 함대는 56척, 칠천량 해전 직전 조선 수군의 함대는 130~180척, 조선 수군의 최대 규모가 이 정도였다.

 

4. 원균은 임진왜란 초기 셀프 파괴 + 칠천량 패전으로 판옥선 200척을 혼자 말아먹었다.

 

5. 이렇게 선조와 조선 조정의 방어 전략은 근본부터 박살이 나고, 한반도에 아무런 피해 없이 손쉽게 상륙한 일본군은 빠르게 조선 침공을 시작했다.

 

6. 이런 전략의 근본부터 박살난 황당한 상황에도 조선의 방어 전략은 어느 정도 작동해서, 대부분의 조선 장수들은 훈련했던 대로 백성들을 퇴각시키고, 병력들을 모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거나 교전을 벌이고 퇴각했다.

 

7.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 둘은 선조의 인재 픽이었다.

 

8. 특히 윤흥신은 명종 때 아버지 윤임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지만 선조가 사면하고 무과에 급제해 다대포 첨사로 부임, 800명의 병사를 이끌고 19,000명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9. 경상도 전역에서 백성들과 군인들이 모여서 왜군을 막으려 했지만 압도적이고 엄청난 물량에 패배하면서 경상도 방어선이 붕괴했다.

 

10. 선조와 중앙 조정은 이때까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신립과 이일에게 기대를 걸지만, 먼저 내려간 이일은 상주에서 패배했다. 이제 남은 중앙군을 모아 북방에서 이름을 날린 명장 신립에게 맡겨 내려보내고, 이 전투에 조선의 명운이 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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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선조와 임진왜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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