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연합을 어떻게 볼 것인가#4

<<광고>>



¶ 임미리 정치학 박사, <경기동부> 저자

 

-광주의 죽음은 70년대 반미 운동 확산과 급진적 사회 변혁 운동 뿌리내리는 계기

-경제위기로 북한의 실상 공개, 남한에는 민주적 근대국가 성립, 주사파 이탈 증가

-고착된 기억은 경기동부연합이 과거 전선을 여전히 현재의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8. 그들은 어떻게 고립되었나

 

5.18, 유신의 아이들에서 주체의 아이들로

광주의 죽음은 1970년대 반미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였고, 동시에 급진적 사회 변혁 운동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광주의 죽음은 죽지 않으려면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모든 운동은 정치 운동이 됐고, 모든 운동가는 정치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일이다. 국가라는 틀 안에서 적과 우리 편을 갈라야 한다. 단일한 전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진영 논리가 최우선이 되는 운동이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확산된 주체사상은 이런 진영 논리를 한층 강화시켰다.

 

주사파를 통해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은 남한의 대표적인 저항 이데올로기가 됐다. 주사계 운동 조직의 비민주성, 조직 내부의 억압과 강제는 바로 통치의 도구를 아무런 여과 없이 저항의 수단으로 수용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사파가 대중으로부터 괴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저항 이데올로기로 수용하면서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죽음은 남한 정부를 부정하게 만들었고, 북한을 민족 유일의 민족적 정통성을 가진 국가로 받아들이게 했다. 왜곡되고 차단된 정보 속에 알게 된 김일성과 북한의 실체에서 비롯된 역편향이었다. 그리고 유신의 아이들은 광주의 죽음을 거쳐 주체의 아이들로 바뀌어 갔다.

 

남한의 민주화와 북한의 경제 위기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남한은 여전히 정상 국가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통일 운동을 탄압했고 1992년 윤금이 씨 살해 사건, 2002년 여중생 사망 사건처럼 미군 범죄도 여전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는 운동권을 계속 탄압했고, 주사파 운동권은 여전히 미국은 적으로, 북한은 대안적 국가 모델로 간주했다.

 

남한의 민주화와 북한의 경제 위기 속에 남은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남한 정부는 스스로 외면했고 북한을 대안이라 주장해도 믿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북한을 더 이상 대안으로 여길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고 주사파의 존립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남한 정부와 민중 간의 적대적 전선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실상이 공개되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로 남한에 드디어 민주적 근대 국가가 성립한 것이다. 남한 정부 밖에서 자신을 구성했던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주사파에는 이탈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 남한 정부와 민중은 여전히 적대적 단일 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관계였다. 남한 정부의 정상화와 북한 체제의 위기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게 됐다. 남한 정부는 스스로 외면했고 북한이 여전히 대안이라 주장해도 믿어 줄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그리고 국가를 기획한 근대로부터 배제되고 말았다. 국가와 근대의 밖에 존재하는 하위 주체가 된 것이다.

 

적대적 진영 논리, 기억의 고착, 집단의 덫

진영 논리는 밖으로 적대성을 강화하고 안으로 이견을 봉합한다. 적대성은 진영 논리의 존재 기반이다. 적대성이 커질수록 내부의 단결은 강조된다. 단결이 강조될수록 내부의 이견은 단결을 해치는 요소로 간주되면서 봉합돼 버린다. 사고와 운동은 정지된 채 사람들은 깃발의 노예가 된다.

 

진영 논리는 집단 기억을 매개로 배가된다. 집단 기억은 기억을 고착시킴으로써 집단 내부를 통합하고 배타성을 강화시킨다. 경기동부연합은 차별과 배제의 기억뿐만 아니라 승리의 기억 또한 매우 강하다. 경기동부연합의 헌신과 열정이 만들어 낸 전설과 기적같은 성과는 경기동부연합을 더욱 강고하게 결합시키는 힘이면서 동시에 자신들만의 기억에 갇히게 하는 요인이 됐다.

 

고착된 기억은 경기동부연합이 과거의 전선을 여전히 현재의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강한 결속력과 군사 조직과 유사한 규율로 자신들을 무장했다. 안으로는 비판 없는 시간이 계속됐고 밖으로는 패권주의가 날로 강화됐다.

 

강한 결속력은 민노당 시절 패권주의로 나타나면서 당악을 장악하는 기반이 됐지만 비례대표 사태에서는 고립의 이유가 됐다. 집단의 결속력이 강할수록 작은 상처도 두려워하게 된다. 그들은 부정 선거를 반성하고 사과할 수 없었다. 부정 선거를 인정하는 순간 상처가 나고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바로 ‘집단의 덫’에 빠져버린 것이다.

 

<연재 리스트>

경기동부연합을 어떻게 볼 것인가#1

<<광고>>



No comments
LIST

    댓글은 닫혔습니다.

위로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