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줄에 친구들과 한라산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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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힘든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을 등정하기로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것은 ‘버킷 리스트’ 때문

-미명의 새벽, 성판악의 어둠 속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듬어 오르는 길은 신선하고 쾌적

-체력이 고갈된 채 정상에 올랐던 두 친구는 결국 하산길에 주저앉아 산악 구조대가 구조

 

 

결과적으로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 마치고 내려온 지금 생각을 해 보면 무리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시당초 우리들이 백록담을 오르기로, 그것도 가장 힘들다는 성판악을 기점으로 산행을 계획한 것부터가 그랬다. 70줄 나이의 우리들이 왜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던 것일까.

 

여기에는 뭔가 이성적으로 엮여야 하는 서로의 생각이 다소 감정적이었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나왔다.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들 중의 하나로 백록담 등정을 꼽느니 마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면서 좀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빠져 버린 것이다. 좀 장황해졌지만, 이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한라산 백록담 등정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우리들은 새벽부터 성판악을 기점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닥치게 될 힘든 등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출발은 그만큼 의기양양했고 힘이 넘쳤다. 다만 한 친구가 걱정되기는 했다. 자기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 친구는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고 했고, 우리들은 저 친구는 원래 저러니까 하면서, 그 친구가 취해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한 조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미명의 새벽, 성판악의 어둠 속을 더듬어 오르는 산길은 신선하고 쾌적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흩어지는 헤드랜턴 불빛이 뭔가 구원의 손길같이 따뜻한 안도감을 안긴다. 관리공단 측의 어쩌면 좀 심할 정도의 엄격한 입산 인원 관리 및 통제에 내심 불만이 있었으나, 그로 인해 산길이 붐비지 않는 혜택도 있었다.

 

날이 좀 밝아지면서 한라산의 싱싱한 속살 속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 속에 우리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평탄한 산길이 너덜같은 자잔한 돌무더기 길을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숲속을 기웃거리듯 내려 앉는 엷은 아침 햇살은 한라산 숲속의 신비감을 안기면서 그 느낌으로 그걸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한라산 숲속 산길은 산죽(山竹)의 길이었다. 산죽은 성판악 초입부터 우리들을 끝없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무성한 산죽 산길을 걸어오르며 나는 문득 가야산을 떠올렸다. 가야산 산길도 처음부터 끝까지 산죽과 함께 오르는 산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가야산 새벽 산죽 산길을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근 반세기 전의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생각은 적어도 속밭대피소까지로 이어졌다. 속밭대피소까지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온 것은 아마도 무성한 산죽과 아버지와 함께했던 가야산의 추억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성판악에서 오르는 한라산 백록담 등정은 생각하기로 속밭대피소까지와 속밭대피소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구분은 백록담 등정의 난이도를 결정짓는 구분에 다름 아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속밭대피소부터 다음 진달래밭대피소까지가 힘이 든다는 얘기다. 이 지점부터 경사가 좀 가팔라지면서 특히 너덜길의 돌들이 크고 날카로워 걷고 오르기 점차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라산 동릉 정상을 오르면서 또 하나의 장애는 세찬 바람이었다. 정지용 시인이 8월에 오르며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이라 했던 그 바람이다.

 

그 어려움은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한라산 동릉(東陵)을 오르며 가중된다. 산행 안내도를 보면 이 코스의 난이도를 ‘보통’으로 적어 놓았는데,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엄청 힘이 들었다. 특히 동릉 정상이 빤히 보이는 지점부터는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길이 험하다. 나는 이 코스를 오르며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수십 번을 쉬었을 것이다.

 

아 참, 앞에서 언급한 좀 부실한 친구 얘기를 빠뜨렸다. 우리들은 그 친구가 아마도 속밭대피소까지만 오른 후 내려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계속 따라붙어 마침내 동릉 정상과 백록담까지를 넘겨보고 있었고, 우리들은 그 친구의 파이팅을 격려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친구보다는 다른 한 친구의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동릉 정상과 백록담까지 오르면서 유유상종, 우리들은 자연적으로 세 파트로 나뉘었다. 여기서 유유상종이란, 체력적으로 비슷하게 끼리끼리가 됐다는 얘기다. 1진이 여섯 명, 2진이 두 명, 3진이 상태가 좋지 않은 두 친구였는데, 이때 우리들은 3진의 두 친구들을 케어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조그만 안전사고를 낳게 한 것이다.

 

동릉 정상을 오르면서 또 하나의 장애는 세찬 바람이었다. 정지용 시인이 8월에 오르며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이라 했던 그 바람이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은 거셌고 또한 찼다. 당연히 해발 1,900미터 이상이니, 이 지점의 바람은 거의 몸이 날아갈 정도로 강하고 세다. 내가 다른 친구 한 명과 이 코스를 악전고투로 오르고 있을 때 먼저 올라 간 1진 친구 6명은 이미 내려오면서 우리들과 조우했다. 다들 얼굴이 얼어붙은 표정들이었다.

 

드디어 백록담을 굽어보는 정상에 섰다. 하지만 잠시라도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바람이 차고 거셌다. 그런 상황에서 본 백록담은 얘기 들은 바 그대로, 그리고 정지용 시인이 읊었듯 ‘조촐한 물’도 없이 그저 거대한 함선의 느낌을 주는 구덩이 그 자체였으나, 뭔가 말로는 형용 못할 어떤 위용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도 정상인 백록담까지 천신만고 끝에 왔으니, 사진 한 장이나 남기자며 나름 애를 쓰다가 스마트폰을 바람에 날려 보낼 뻔했지만 그래도 용케 사진은 찍었다.

 

백록담에 잠시 점을 찍고 친구와 같이 내려오는데, 우리 일행의 3진 두 친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같이 또 올라가자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증 사진을 좀 찍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얼어붙어 가는 두 친구의 얼굴에서 퍼뜩 느껴진 것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친구들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만큼 여유를 허용하지 않은 체력의 고갈과 긴박감 때문이었다.

 

결국 그 친구 둘도 그런 상태로 백록담으로 올랐다. 두 친구의 체력은 그때 이미 거의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 두 친구도 무사히 백록담을 밟았고, 또 무사히 내려와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다들 만나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하산길에 결국 사고가 생겼다. 뒤에 처져 내려오던 그 두 친구 중 하나가 속밭대피소를 막 지났을 무렵 급격히 체력이 고갈되면서 허리 통증과 함께 주저앉을 상태가 된 것이다. 먼저 내려온 우리들이 성판악 구조대에 신고했고 옥신각신 끝에 겨우 모노레일을 이용해 두 친구들을 구조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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