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2) 영일 동맹과 러시아의 용암포 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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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러시아, 동청철도 보호를 구실로 1차 8만 명, 2차 16만 명 출병. 만주 전역 점령

-영일동맹, 일본의 특수 이익 보장. 독일·프랑스 대일 참전 불가능. 러시아는 고립

-러시아, 만주 철병지역 재점령하고 병력 증파. 1903년 압록강 삼림 채벌에 착수

 

 

1900년 6월에 의화단 사건은 만주에도 파급되었다. 7월에 의화단은 요양지방에서 철도를 파괴하고 러시아 철도 수비대를 공격했다. 건설 중인 러시아의 동청철도는 위협을 받았다(동청철도는 만주리- 하얼빈-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시베리아 철도의 일부로서, 남만주 지선은 하얼빈에서 뤼순·다롄으로 연결된다. 러시아는 1898년에 뤼순·다롄을 조차(租借)한 다음, 1896년에 확보한 동청철도부설권을 활용 하얼빈역에서 뤼순에 이르는 남만주지선 부설권까지 차지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동청철도 보호를 구실로 처음에는 8만 명, 나중에는 16만 명을 출병시켜 만주 전역을 점령했다.

 

그런데 의화단 사건이 종결된 1901년에도 러시아는 만주에서 철병하지 않고 계속 주둔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반발했다. 특히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명예로운 고립 정책’을 포기하고 일본에게 동맹을 제안하였다.

 

러시아는 1903년 4월부터 압록강 삼림 채벌에 착수하였다. 사진은 1930년대 압록강 삼림 채벌 모습.

 

1902년 1월 30일 영국 런던에서 제1차 영일동맹이 체결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영·일 양국은 한(韓)·청(淸) 양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영국은 청에, 일본은 한국에 각각 특수한 이익을 갖고 있으므로, 제3국으로부터 그 이익이 침해될 때는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2. 영·일 양국 중 한 나라가 전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3국과 개전할 때는 동맹국은 중립을 지킨다.

 

3. 위의 경우에서 제3국 혹은 여러 나라들이 일국에 대해 교전할 때는 동맹국은 참전하여 공동작전을 펴고 강화(講和)도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한다.

 

이 동맹으로 영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특수한 이익을 보장했다. 당사자인 한국은 아예 패싱 당한 것이다. 이게 고종의 외교였다.

 

영일동맹은 즉각 효과를 나타냈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일 참전이 불가능해졌고, 러시아는 고립되었다. 러시아는 불리해진 국제정세를 인식하여 1902년 4월 8일에 청나라와 만주 철병 협정을 조인하고 10월부터 6개월 간격으로 3차에 걸쳐 만주에서 철군하기로 했다.

 

10월 8일에 러시아 군대가 1차 철군하였다. 그런데 러시아는 2차 철군 예정일인 1903년 4월 8일에 철군하지 않고, 오히려 1차 철병지역을 재점령하고 병력을 증파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1903년 4월부터 압록강 삼림 채벌에 착수하였다. 5월 초에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 일부가 압록강 하구 및 용암포까지 진출, 한국인 명의로 토지를 매입하고 병참부로 사용할 창고 및 사무소 건설공사에 착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마산의 벌목까지 강행함으로써 그들이 확보한 압록강 삼림 채벌권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하였다.

 

7월에는 러시아 삼림회사 한성 주재원 귄즈버그와 고종의 최측근인 궁내부 내장원경 이용익이 서로 결탁하여 사방 10리의 용암포의 토지를 러시아 삼림회사의 목재저장소로 대여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친러파 조성협이 삼림감리(森林監理)로 파견되어 러시아삼림회사 총무인 모지스코와 교섭, 7월 20일에 ‘용암포 조차(租借)에 대한 가조약’을 체결했다.

 

‘용암포 조차 가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과 영국은 즉각 반발했다. 일본의 고무라 외상은 주한일본공사 하야시에게 즉각 전문을 보내어 이를 저지하도록 하였다. 이에 하야시는 용암포를 러시아의 조차지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며, 모든 나라가 균점할 수 있는 개항장으로 개설하라고 조선 정부에 강력 항의하였다.

 

이런 일본의 항의에 대해 외부(外部)는 하야시에게 “그 조약은 조성협 개인이 체결한 사적 사항일 따름이며, 용암포를 개항장으로 만들 의사가 있다”라고 언질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9월 중순부터 용암포의 뒷산인 용암산에 포대(砲臺)를 구축하고 석탄 및 탄약을 적재한 선박을 입항시켰으며, 용암포에서 약 10리 정도 하류에 위치한 두류포에 망루를 건설하는 등 노골적인 군사기지화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용암포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은 날카롭게 대립하였고, 러일전쟁 발발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재 리스트>

(1) 해양-대륙세력 격돌한 ‘0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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