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식용 금지’도 결국 파시스트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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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달

 

-개가 인간의 친구? 닭, 돼지, 소 등도 마찬가지. 일정한 지능 있는 동물은 인간과 교감

-직접 길렀던 동물은 먹기 힘든 법. 가족처럼 생각하던 누군가에겐 트라우마로 남게 돼

-남의 개도 먹지 않겠다는 건 선택의 문제. 본인 취향 남에게도 강요하는 건 ‘파시스트’

 

 

정신 나간 문가가 개고기 금지한다니까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 와중에 개빠들이 또 숟가락을 놓는구나. 식용으로 키운 개든 집에서 기른 개든 개고기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면서 그 이유라고 드는 건 오직 하나, 개는 인간의 친구이기 때문이란다.
개는 본능적으로 무리를 짓는 사회성이 있고 서열을 따지기 때문에 같은 집단의 일원이거나 특히 리더로 인식하는 사람에 대해 복종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걸 교감이라 부르며 개가 무슨 인간의 감정을 가진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는 개일 따름이며 사람이 될 수 없다. 인간과 소통하는 능력은 먼 옛날부터 일부 늑대에게 이어져 내려온 본능일 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 고양이와 같이 살았다. 마누라가 지닌 알레르기 때문에 지금은 고양이를 기르지 못하는데, 대신 애들이 원해서 토끼 한 마리 들여왔고 개는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
그렇다고 개가 다른 동물보다 아주 특별하고 다른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개를 인간의 친구라고 한다면 고양이도 마찬가지며 토끼도 그렇고 심지어 닭이나 돼지, 소도 그렇다. 시골에서 병아리를 치거나 소에게 여물을 줘 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수준 이상의 지능이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인간과 ‘교감’을 한다.

자신의 개는 물론 남의 개도 먹지 않겠다는 건 개인적 선택이자 기호에 불과하다. 존중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개인 차원을 넘어 본인의 취향을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건 파시스트나 할 짓이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게 있다. 말이야말로 더더욱 인간과 교감을 많이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개처럼 무조건적인 충성이나 아양을 떨진 않되 다른 형태로 사람과 깊은 감정적 유대를 갖는다. 솔직히 나도 말을 타 본 적이 몇 번밖에 없어 잘은 모르는데 말 주인들이 그리 말하니 그런갑다 한다. 말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들 말이 맞겠지.
암튼 그런 말도 식용으로 도축되곤 하지만 그걸 먹어선 안 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삿대질하는 말 주인들은 극히 드물다. 단지 자기가 기르고 교감했던 말은 먹지 않을 뿐. 그건 그냥 동물이 아니라 친구고 가족이니까.
원래 자신이 직접 기르고 같이 사는 동물은 먹기 힘든 법이다. 옛날 시골에서야 사위 오면 씨암탉 잡고 복날에 누렁이도 패 죽이고 했다지만 그때마다 그 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던 누군가 – 보통은 그 집 아이들 – 에겐 깊은 트라우마로 남게 마련이다. 사실 감정적으로 힘드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여서 보통 직접 기른 동물은 차마 손수 죽이지 못하고 장에 내다팔거나 다른 이웃에게 부탁해 도살하곤 한다.
개를 먹는 것에 대해 뭐라 하고 싶거들랑 차라리 집에서 기른 동물을 잡아먹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개고기를 거부하고 싶거든 차라리 모든 살생을 비난하고 비건처럼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그나마 논리적일 것이다.
내가 직접 기르고 같이 사는 동물만 내 가족이며 친구고 반려자다. 남의 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 사람이 될 수 없다. 자신의 개는 물론 남의 개도 먹지 않겠다는 건 개인적 선택이자 기호에 불과하다. 존중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개인 차원을 넘어 본인의 취향을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건 파시스트나 할 짓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세상 어떤 형태의 파시즘에도 반대한다. 남에게 개고기를 못 먹게 하는 개빠들은 파시스트이며 따라서 나의 적이다. 그들의 무지함과 폭력성에 언제나 저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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