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만났던 따뜻한 멸치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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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국수’가 눈에 들어오면서 허기가 밀려왔다. 우리 부부는 국숫집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아내를 다독일 때 문득 맞은편 벽면 액자에 적힌 ‘다시멸치육수’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의 국숫집. 절망의 끝에서 목구멍 따뜻하게 적셔 주던 멸치국물, 그리고 막걸리 

 

 

급작스럽게 생긴 우환으로 아내와 인천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왜 집을 두어 정거장을 앞두고 내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머리는 복잡했고, 몸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아내와 우산도 없이 걷다가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집 추녀 밑에 섰다. 그때 눈에 들어 온 까만 글자의 간판. ‘국수집’. 맞은편에 국수를 파는 가게였다.

 

‘국수’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그때는 오후를 지나 저녁 무렵으로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허둥지둥하느라 아침부터 굶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내와 나는 그 국숫집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가게는 한산했다. 어떤 분이 장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막걸리가 당겼다. 막걸리 한 병에 장떡 두 장, 그리고 국수를 시켰다. 따끈한 멸치국물의 국수였다. 장떡보다 오히려 국수가 막걸리 안주로 좋았다.

 

아내는 국수를 먹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디 다른 데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를 다독였다.

 

“걱정 마라.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어떻게든 잘 해결될 것이다. 내가 다 알아 할 테니 걱정 마라.”

 

내 말에 아내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내를 그렇게 다독일 때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맞은편 벽면의 액자에 적힌 글이었다. 그것은 한 편의 시(詩)였다. <다시멸치육수>라는 조재선이라는 분의 글이었다.

 

가게는 한산했다. 갑자기 막걸리가 당겼다.

국숫집에 맞는 시라는 생각에 그 시를 찬찬히 읽어 나갔다.

사랑의 진국을 마신다.

 

너를 아낀다며
고운 볕에 눕혀
피골(皮骨)이 상접하도록 방치했지

 

돌아와 너를 찾으니
종이처럼 가벼운 허물만 남았구나.

 

안타까움에
네 몸에 갖은 사랑 쏟아 부으니
거추장스런 가식의 잡물
한쪽으로 내몰리고
둥둥 뜨던 경솔함도
신중하게 드러 눕는다.

 

비로소
금단의 문이 열리고
애처로운 영혼
망신창이가 되도록 녹아든다.

 

너를 맛보면 맛볼수록
벗어날 수 없는 이 깊은 감칠맛

 

저 나락에 몸을 벗어던진 채,
동그란 눈을 뜨고
오뉴월 한(恨)서린 여인처럼
나를 바라 보는 너의 눈빛

 

말 못한 그리움이 화살되어
가슴에 박힌다.
(<다시멸치육수를 내며>, 조재선)

 

오늘 다시 이 시를 대한다. 따뜻한 멸치 육수 국수에 막걸리를 마시던 10년 전의 그날 그 국숫집이 떠올려진다. 절망의 끝에서 목구멍을 따뜻하게 적셔 주던 멸치 국물, 그리고 막걸리.

 

그 국숫집은 이제는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다.

 

그 시를 다시 찾아 봤더니, <다시멸치육수를 내며>가 원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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