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나다”라고 말하는 보바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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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보바리 부인』은 저속하고 외설적인 싸구려 여성 변호 소설인가? 오해다, 전혀 틀린 평가다

-환경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하는 심리상태 뜻하는 ‘보바리즘’이란 신조어 탄생 배경 소설

-소설 속 그녀에게는 변함없는 나날이 계속, 미래는 캄캄한 복도, 그 끝 문은 꽉 닫혀 있었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관능적 여인의 대명사다. 한국 영화 ‘애마 부인’도 그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바리 부인』은 저속하고 외설적인 싸구려 소설인가? 오해다.

 

엠마 보바리는 자기 분수를 모른 채 사치하고 불륜을 저지르다 파멸에 이르는 불행한 여인의 대명사다. 그래서 한국의 일부 여성 평론가들은 플로베르가 이 여성을 변호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펼친다. 전혀 틀린 말이다.

 

문학 평론가 쥘르 고티에는 이 소설을 읽고 보바리즘(Bovarysm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사회가 혹은 주변 환경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하는 심리 상태를 뜻한다. 그건 엠마 보바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 상태다. 작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 그것은 바로 나다!”라고 말한 이유이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엠마 보바리의 권태로운 생활을 우선 들여다 보자.

 

때는 1850년대, 장소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골 마을이다. 

 

시골 의사 샤를르 보바리의 아내 엠마는 한적한 시골에서의 평범한 결혼 생활에 한없는 권태를 느낀다.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 설레이지만, 새들은 늘 같은 노래를 부르고, 오늘은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다. 늘상 똑같은 일상이 무덤처럼 지루하고 따분하다.

 

엠마는 조금 멀리 너도밤나무 숲까지 자주 가곤 했다. 들판을 마주보고 서 있는 성터 모퉁이에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집이 있다. 집 언저리 마른 도랑에 잡초 우거져 있고, 날카로운 긴 갈댓잎이 잡초와 어우러져 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디기탈리스며 향꽃장대, 커다란 돌을 둘러싸고 있는 쐐기풀 덤불이며 세 개의 창문에 낀 이끼가 모두 그대로이고, 덧창은 푸석푸석 삭아 녹슨 쇠막대 위에 걸려 있다.

 

강아지가 들판을 빙빙 돌며 뛰어다니다, 노란 나비를 보고 짖어대고, 들쥐를 잡으려 보리밭 가의 양귀비를 물어뜯고 있는 동안, 엠마의 생각은 정처 없이 방황한다. 이윽고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풀밭에 앉아 양산 끝으로 풀잎 사이를 콕콕 찍으며 그녀는 속으로 되풀이 말한다.

 

“아! 내가 왜 결혼했지?”

 

마음 저 밑바닥에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난파선의 선원처럼 자기의 고독한 생활을 절망적인 눈으로 훑어보면서.

 

물론 그녀는 집안일도 열심히 했다. 환자들에게 계산서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말투로 왕진비를 청구하는 글솜씨와 예의범절이 뛰어났고, 일요일 식사에 이웃 사람들은 초대할 때는 멋진 음식을 내놓을 줄도 알았다. 포도 잎에 자두를 피라밋처럼 모양 좋게 쌓아 올리는 재주도 있었으며, 잼을 작은 항아리째 내놓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디저트를 먹을 때 손을 씻는 핑거볼을 아주 센스 있게 장만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남편에 대한 평판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이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샤를르와의 대화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고, 웃음도 꿈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남자란 모든 것을 알고, 갖가지 일에 뛰어나며, 정열의 힘과 세련된 생활이 있고, 모든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안내자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희망도 없다. 게다가 아내가 행복한 줄로만 알고 있다. 조그만 불안도 없는 이 우둔성이 그녀는 너무나 싫었다.

 

샤를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지름길로 말을 타고 달렸다. 농가 식탁에서 오믈렛을 먹고, 축축한 잠자리 밑에 손을 쑤셔 넣고, 솟아오른 피의 미적지근한 핏방울을 얼굴에 맞고, 빈사 상태에 빠진 병사의 목구멍에서 끓는 가래 소리를 듣고, 대야 속을 살피고, 더러운 속옷을 걷어 올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언제나 활활 타는 따뜻한 난로와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식탁, 푹신한 의자, 세련된 옷차림의 아름다운 아내를 볼 수 있었다. 아내는 매력 있고, 몸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의학 잡지’를 구독했다. 저녁 식사 뒤에 조금씩 읽었는데, 따뜻한 방 안 온도와 나른한 식사 뒤의 쾌감으로 5분만 지나면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갈기 모양의 머리칼을 램프대에 늘어뜨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엠마는 그런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남자, 예순이 다 되어 류마티즘에 걸릴 나이가 되면 서툴게 재단한 검은 옷에 훈장걸이쯤 달고 다니는 그런 남자를 왜 남편으로 갖지 못했던가? 자기의 성(姓)이 된 보바리가 유명해지기를 그녀는 바랐다. 그 이름이 서점에 진열되고, 신문에 되풀이하여 나타나고, 프랑스 곳곳에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샤를르는 도무지 야심이 없었다.

 

‘다른 운명으로 딴 남자를 만날 수는 없었을까’라고 엠마는 생각해 본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지금과 다른 생활, 미지의 남편을 마음속에 그려 본다. 세상 남자들이 모두 지금의 남편 같은 사람들만은 아니리라. 미남에다 재주 있고 품위 있고 매력적인 남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수도원 기숙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틀림없이 그런 남자들과 결혼했겠지.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도회지에 살며, 거리의 소음, 극장의 떠들썩한 분위기, 무도회의 휘황한 불빛, 그런 것에 둘러싸여 마음이 부풀고 관능이 꽃피는 생활을 하고 있겠지. 그런데 나는 겨우 북쪽에 창문 하나 달랑 있는 다락방처럼 차갑고 권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어둑한 방에는 침묵이라는 흉측한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다.

 

후작의 무도회

 

9월도 다 갈 무렵, 난데없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앙데르빌리에 후작 집에 초대 받은 것이다. 왕정 복고 시대에 국무대신을 지냈던 이 후작은 다시 정계로 돌아가기 위해 하원의원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사방에 장작을 나누어 주고, 현(縣) 의회에서는 언제나 떠들썩하게 자기의 선거구에 새 도로를 만들도록 요구하곤 했다. 한여름에 이 사람의 입 안에 종기가 난 것을 샤를르가 수술해서 기적적으로 고쳐준 인연으로 후작은 보바리 부부를 무도회에 초대했다. 엠마는 소설 속에서만 읽던 화려한 상류사회의 무도회를 난생 처음 구경했다. 그리고 그 후 우울증은 한층 깊어졌다.

 

무도회에서 돌아온 다음 날, 그녀는 집 안의 작은 뜰을 거닐었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고, 울타리의 과일나무 앞, 사제의 석고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너무나 익숙한 모든 것들을 새삼 놀라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무도회가 얼마나 먼 옛날의 일처럼 여겨지는지! 대체 누가 그저께 아침과 오늘 저녁을 이처럼 멀리 떼어 놓았는가? 무도회 사건은 마치 폭풍우가 산 속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놓듯이 그녀의 생활에 구멍을 뚫어 놓고 말았다.

 

호화로운 생활과의 접촉은 그녀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 무언가를 남겨 놓았다. 엠마에게는 그 무도회를 회상하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매주 수요일 날마다 그녀는 눈을 뜨기 무섭게 생각하였다.

 

“아니! 1주일 전에는… 2주일 전에는… 3주일 전에는… 거기에 있었어!”

 

마침내 파리 지도를 하나 구입하여,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를 더듬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길모퉁이, 또는 길과 길 사이 집을 표시하는 하얀 사각형 앞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며 대로(大路)를 거슬러 올라갔다. 피로해진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가스등 불빛, 극장 앞에서 덜컥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지는 마차 발판이 떠올랐다.

 

여성 잡지 <코르베이유>와 <살롱의 정수>도 구독했다. 초연된 연극, 경마, 야회 등에 관한 기사를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읽었고, 여가수가 처음 등장하는 무대라든가, 새로 문을 여는 상점 같은 것에도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였다. 최신 유행이며, 유명한 의상실 주소, 불로뉴 숲의 축제일과 오페라 극장의 초대일을 외웠다.

 

인기 소설도 열심히 읽었다. 외젠느 쉬의 소설에서는 실내 조명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발자크나 조르주 상드의 작품에서는 욕망의 상상을 만족시켰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파리는 주홍색의 안개에 잠긴 바다와도 같았다. 귀족들의 대저택 살롱은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고, 마룻바닥은 반드르르 윤이 났으며 타원형 탁자에는 금빛 레이스를 단 빌로드 테이블보가 씌워져 있었다.

 

탁자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는 대사(大使)들의 미소 속에는 고민이 감추어져 있었고, 가끔 큰 비밀도 있었다. 창백한 공작부인들은 모두 속치마 단에 영국 레이스를 달았으며, 새벽까지 무도회를 즐기다가 다음 날 일어나는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경박한 외모와 한량 기질의 남자들은 야외놀이나 하러 다니느라 말을 지치게 만들고, 여름에는 바덴바덴에 피서나 가고, 마흔이 다 되어서야 겨우 유산 있는 여자와 결혼했다.

 

한밤중이 지나도 밤참을 먹을 수 있는 살롱에는 문인과 여배우들이 모여 있었다. 휘황한 촛불 밑에서 왁자하게 담소하고 있는 그들은 모두 왕처럼 돈을 낭비하고, 꿈같은 야심과 환상의 흥분에 차 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삶은 달빛 아래에서의 한 숨, 긴 포옹, 방심한 듯이 상대방에게 맡긴 손에 흐르는 눈물, 격렬한 욕정과 애정의 괴로움, 한가로운 거대한 저택의 발코니였다. 두꺼운 융단, 꽃이 가득 담긴 꽃바구니, 한 단 높이 놓은 침대, 비단 커튼, 반짝이는 보석, 장식끈 달린 하인 제복의 번쩍거림이었다. 공중에 떠있거나, 폭풍우에 쌓였거나, 여하튼 그 무엇보다 뛰어난, 숭고한 삶이었다.

 

그러나 현실 속 그녀의 집에서는 아침마다 말을 돌보러 오는 역참의 젊은이가 구멍 뚫린 작업복에 억센 나막신을 신고 복도를 지나갔다. 고작 이것이 짧은 바지를 입은 대저택 시동(侍童)의 대용인 셈이며, 이것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다! 일이 끝나면 젊은이는 돌아가고, 저녁에 돌아온 샤를르는 손수 말을 마구간에 넣고, 안장을 떼고, 굴레를 씌웠으며, 그 동안에 하녀는 짚단을 구유에 던져 넣어 주었다.

 

무도회 나들이 이후 그녀는 한층 더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 남편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경박해졌다. 디저트를 먹을 때, 빈 병마개를 칼로 자르기도 하고, 음식을 먹은 뒤 혀로 이를 핥기도 하고, 수프를 먹을 때면 번번이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곤 했다. 살이 찌기 시작해 원래 작은 눈이 두드러진 광대뼈와 함께 한층 더 관자노리 쪽으로 바짝 올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아득히 먼 곳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막한 나라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데, 자신의 바로 옆에는 따분한 시골, 어리석은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만이 있었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난파선의 선원처럼 자기의 고독한 생활을 절망적인 눈으로 훑어보면서 아득히 먼 수평선의 짙은 안개 속에 흰 돛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고 바랐다. 10월이면 앙데르빌리에 후작이 다시 무도회를 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9월이 다 가도록 편지 한 통 없었고,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았고, 변화 없는 똑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날들이 영원히 변함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미래는 캄캄한 복도이고, 그 끝의 문은 꽉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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