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자부심, 1914년 독일 철십자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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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3세 명에 따라 칼 슁켈이 디자인한 독일 첫 ‘철십자 훈장’. ­“간결, 품위 있다”는 정평

-용감한 독일군의 자부심. 패전 후 동유럽 주민들이 가공해 소중한 전쟁 기념품으로 판매 중

-훈장 달고 돌진했던 병사 “광란의 현장에 뿌려진 막대사탕”이라는 평가를 상상이나 했을까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들이 언제나 승리의 소식을 전해주길 바라지만, 이들에게 애국심만으로 무작정 용감하게 싸우라며 독려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들에게는 이들의 목숨을 건 헌신에 대하여 영지나 금은보화, 노예를 나누어 주는 합당한 보상을 했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는 곧 고갈되기 마련이다. 군인들의 전공(戰功)에 대해 승진과 함께 명예를 고양시키기 위한 승리의 표징을 주어 포상하기 시작한 이유이다.
이집트의 황금 목걸이부터 로마의 목걸이나 반지가 그 시작이었고, 중세를 지나면서 끝이 무딘 창이나 글자를 새긴 금속판을 수여하는 훈포장 제도가 마련되었다. 의무 복무 제도 하에서, 훈장은 매우 경제적인 수단이었고 즉각 효과가 있었다. 나폴레옹은 “나에게 충분한 수의 훈장만 있다면, 어떤 전쟁도 이길 수 있겠다”고 했고, 그가 제정했던 프랑스의 레종도뇌르 훈장은 아직도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1900년 대한제국 시절 서양 군사제도를 도입하면서 훈장 조례를 제정하였고, 건국 후 국가에 대한 공헌을 직급과 공로에 따라 구분하여 훈장을 수여하고 그에 합당한 의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진은 1차 세계대전 중이던 독일 제국이 1914년부터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수여했던 철십자 훈장. 핀이 손잡이가 된 철제 종이다. 넓었던 1차 대전 동부전선에서 남겨져 돌아다니던 독일군의 2등급 철십자 훈장(EK II)을 가공하여 만든 길이 7×6센티미터, 무게 87그램의 작은 종으로, 일종의 전쟁 예술품(참호 예술품, trench art)이다. 당시 동부전선 전장이었고 구소련의 서부지역 방어선이었던 우크라이나에게 구입했다.

1914년 1차세계대전시 EK2 훈장을 손잡이로 만든 철 종 iron bell.

한 면에는 철십자 훈장이 처음 제정된 1813년과 당시 프러시아 황제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의 약자인 “FW”, 그리고 왕관이 상수리나무 잎과 도토리가 함께 새겨져 있다. 위스키나 포도주를 저장하는 통으로 많이 알려는 상수리나무(oak tree)는 유럽에서는 힘과 인내의 상징이어서 16세기 후반기 이후 영국 왕가와 귀족의 문장紋章에 들어갔고 프러시아도 19세기 초부터 훈장과 동전에 즐겨 새겼다. 뒷면에는 1차 대전이 시작된 1914년과 당시의 황제 빌헬름(Wilhelm)을 의미하는 “W”가 새겨져 있다.

근대 독일제국의 심장이자 영혼이라는 독일 철십자 훈장(iron cross, Eiserne Kreuz, EK)은 간결하면서도 품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의 첫 훈장인 EK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813년 3월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명에 의해 칼 슁켈(Karl Schinkel)이 디자인했다.
1813년, 왕관, 상수리나무와 WF이 새겨진 훈장은 이미 작고한 프리드리히 3세의 왕비 루이제(Louise)의 생일에 즈음하여 만들어졌고, 수훈자의 왼쪽 앞가슴에 달린다. 1813년 훈장(EK1813)이 처음 만들어진 후, 독불전쟁(EK 1870), 1차 세계대전(EK 1914)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EK 1939)등 여러 전쟁을 겪을 때마다 많은 철십자 훈장이 만들어졌다. 2차 대전 시의 훈장에는 독일 나찌 마크(卍 비슷한 하겐크로스)가 새겨졌는데, 전후 독일에서 나찌 마크의 공식적인 표현과 이를 포함한 물품의 유통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철십자 훈장 EK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대십자 훈장(Grosskreuz, Grand Cross)은 전투 부대의 사령관에게 수여되었고, 1등급 충성 훈장(Eiserne Kreuz 1 Klasse, first class, “EK I”)와 2등급 충성 훈장(Eiserne Kreuz 2 Klasse, second class, “EK II”)은 군인 개인의 성취와 용기를 치하하기 위해 수여되었다. EK는 1등급이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2등급이 제정되었는데, 1등급은 2등급 훈장을 받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었다. 훈장이 제정된 후 1817년까지의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1등급 수훈을 받은 병사는 670명이었다.

인류 역사상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전쟁으로 시작되어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 종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다. 주된 전투는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과 독일군이 대치한 유럽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을 하며 지루한 대치가 계속되어 양 진영 모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동부전선은 처음 독일과 러시아가 팽팽하게 대치했으나, 1914년 후반부터는 심각한 군수물자 부족을 겪던 러시아가 밀리기 시작했다. 1915년 여름, 갈리치아와 폴란드에 이어, 벨라루시와 발트 연안 일부에까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이후에는 동부전선은 교착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반전 기운이 드세어지며 노동자 파업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져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게 되었다.
동-서부 두 전장에서 지루하게 진행되던 전쟁은 독일의 잠수함 공격에 의한 연이은 상선 피격의 피해를 입었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전세는 연합국 쪽으로 기울었고, 동맹국들이 차례로 항복하였다. 결국 동맹국의 주축인 독일은 사망자 203만 명, 부상자 421만 명의 손실을 입고 1918년 항복하였고,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동부와 서부 양쪽에서 광활한 지역을 양도해야 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중 엄청난 수의 철십자 훈장(EK)을 남발했다. 훈장의 앞면은 1813년 첫 디자인을 유지하고 뒷면에 당시 황제의 이니셜 W와 만든 해인 1914년을 표시했다. 정확한 수훈자 수는 전해지지 않으나 약 21만8천 개의 EK1과 519만6천 개의 EK2가 4년간의 대전 동안에 수여되었다고 짐작된다. 1914년 EK I 수훈자 중에 가장 유명한 인간이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바바리아군 하사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히틀러다. 지금도 구글 탐색으로 EK1 훈장을 왼쪽 앞가슴에 달고 이를 뽐내는 듯한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가 받은 두 개의 훈장이 그가 괴물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사진의 금속 종 손잡이로 용도 변경된 2등급 철십자 훈장은 전쟁 중이던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에 독일 병사들에게 주어졌고, 때로는 독일군에 협력한 외국군에게도 수여되었다. 용감한 독일군의 자부심이었던 이 훈장 뱃지나 버클, 핀은 패전한 전쟁 후 이를 획득한 동유럽 주민들에 의하여 가공되었을 것이다. 지구 전체를 엄습했던 첫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 그 광란의 시대를 보여주는 소중한 전쟁 기념품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100여년 전 EK 훈장을 가슴에 달고 적진으로 돌진하며 하나뿐인 청춘을 불살랐던 독일 병사는 자신이 위정자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희생양이었고, 훈장은 그 광란의 현장에 뿌려졌던 막대사탕과도 같았다는 후세의 평가를 아파하고 있지는 않을까?

Kreuz는 독일어로 ‘십자’란 뜻입니다. Eisern은 ‘쇠, 철’이니 EK는 ‘철십자’. 베토벤의 바이얼린 소나타 크로이처는 십자가 아니고, 베토벤이 작곡하여 존경한 프랑스의 바이얼리니스트 크로이처에게 헌정한 바이얼린 소나타여서 Kreuzer가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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