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세기 전 대한제국 망국의 풍경(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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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임꺽정’ 저자 홍명희 아버지 금산군수 홍범식 목매고,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 권총 자결

-황현 “나라가 선비 기른 지 500년,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이왕가에게 매년 150만~180만엔 지급. 조선총독부 세출 3%를 구황실 가족에게 지급

 

 

순국열사와 친일 수작자들

 

한국이 일제에 강점되자 순국열사가 여럿이었다.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4권의 ‘순국 의사’ 조에는 순국 의사 29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금산군수 홍범식,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 승지 이만도, 진사 황현, 판서 김석진, 내관 반학영, 승지 이재윤 · 송종규, 참판 송도순, 정언 정재건, 의관 송익면, 감역 김지수, 영양 유생 김도현, 태인 유생 김천술, 연산 이학순 등.”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아버지인 금산군수 홍범식은 목매어 자결했고,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은 권총 자결,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을미 의병장 이만도는 안동에서 단식하다 순국했다. 관내시 부사인 환관 반학영은 파주에 은거 중 할복 자결했다.

 

『매천야록』의 저자인 황현도 9월 10일에 구례 자택(지금의 매천사)에서 유서와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순국했다.

 

“나는 국가에 녹을 먹지 않아 죽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10월 11일에 경남일보 주필 장지연은 경남일보에 황현의 자결 소식과 함께 절명시 4수를 실었다. 경남일보는 일제에 의해 10월 15일부터 정간되어 10월 25일에 속간되었지만 1914년에 폐간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는 이왕가에게 매년 150만~180만엔을 지급했다. 조선총독부 세출 3%가 구황실 가족에게 지급되는 돈이었다.

 

한편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가 여럿이었다. 이회영 6형제는 서울 명동 일대의 가산을 모두 정리한 돈 600억 원을 들고 중국 서간도로 망명했고, 안동의 이상룡 일가도 가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갔다. 이건승·정원하·홍승헌 등 강화학파 선비들도 자결 대신 항일을 택하고 압록강을 건넜다.

 

한편 황실은 예우를 받고 세비(歲費)도 받았다. ‘한일 병합조약’ 제3조에 의거 순종은 ‘창덕궁 이왕’으로,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 예우를 받았다.

 

10월 10일에 조선총독부는 특별회계 세출예산 외에 이왕가(李王家)의 세비 금(金) 50만 원(圓)을 지출하였다.(순종실록 부록 1910년 10월 10일)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이왕가에게 지급한 세비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매년 150만 엔이었다.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매년 180만엔을 지급했다. 1911-1913년 회계연도 조선총독부 세출예산은 5,047만엔이었다. 조선총독부 세출의 3%가 구 황실 가족에게 매년 지급된 것이다.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2020, p 347)

 

10월 7일에 일본은 ‘한일병합 조약’ 제5조에 의거 매국 친일파 76명에게 귀족의 칭호를 주었다.

 

후작(侯爵)은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윤택영, 박영효, 백작(伯爵)은 이지용, 민영린, 이완용(李完用 총리대신), 자작(子爵)은 이완용(李完鎔), 이기용, 박제순, 고영희, 조중응, 민병석, 이용직, 김윤식, 권중현, 이하영, 이근택, 송병준, 임선준, 이재곤, 윤덕영, 조민희, 이병무, 이근명, 민영규, 민영소, 민영휘(민영준에서 개명), 김성근, 남작(男爵)은 윤용구, 홍순형, 김석진, 한창수, 이근상, 조희연, 박제빈, 성기운, 김춘희, 조동희, 박기양, 김사준, 장석주, 민상호, 조동윤, 최석민, 한규설, 유길준, 남정철, 이건하, 이용태, 민영달, 민영기, 이종건, 이봉의, 윤웅렬, 이근호, 민형식, 김가진, 정낙용, 민종묵, 이재극, 이윤용, 이정로, 김영철, 이용원, 김종한, 조정구, 김학진, 박용대, 조경호, 김사철, 김병익, 이주영, 정한조였다. (순종실록 부록 1910년 10월 7일)

 

작위를 받은 76명을 분석하면 세 가지 큰 흐름이 나타난다. 하나는 왕실인사들이다. 후작 이재완(대원군 조카),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윤택영(순종비 친아버지), 박영효(철종의 사위)는 모두 왕실 인사였다. 두 번째는 집권당인 노론이 절대다수이다. 작위를 받은 76명 중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64명을 분석하면 56명(87.5%)이 노론이고, 소론이 6명, 북인이 2명, 남인은 없다(이덕일 지음, 근대를 말하다, 역사의 아침, 2012, p 93-95). 세 번째는 명성황후 민씨척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민병석, 민영규, 민영소, 민영휘, 민상호, 민영달, 민영기, 민종묵, 민형식이 그들이다.

 

76명중에 8명은 작위 수여를 거부했다. 한규설(을사늑약 반대 참정대신), 유길준(개화파), 김석진(작위 거부 후 자결), 홍순형(궁내부 특진관), 윤용구(총리대신), 조경호와 조정구(대원군의 사위), 민영달(김홍집 내각 내부대신)이다.

작위를 받은 자 68명은 은사금을 받았다. 은사금은 후작 16만 8천 원, 백작 10만 원, 자작 5만 원, 남작 2만5천 원이었다. 현시가로 환산하면 15만 원은 20억1천만 원, 2만 5천 원은 3억3천만 원에 해당하는데 은사금은 공채 이자로 받았다. (서영희 지음, 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2019, p 254-257)

아울러 일본 천황은 대사령을 내려 국사범과 정치범 8백 명을 석방했고, 은사공채 3천만 엔(1999년 가치로 3,600억 원)을 발행해 왕족, 대신부터 시골 양반, 효자 열녀에 이르기까지 89,864명에게 골고루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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