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미술관과 이건희 컬렉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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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

 

-1930년대 유럽 취향 추종하는 데 급급했던 미국에 국립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 주도

-스탈린에게 구매한 <수태고지> 등 1백여 작품 기증하며 ‘후속 작품 선정 기준’ 세워

-이건희 컬렉션 해체 분산시킨 문 정권 만행은 “주인집 곳간 턴 노비들의 약탈”일 뿐

 

 

워싱턴 D.C.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85달러에 세금을 추가해 워싱턴 공유 자전거(Capital Bikeshare) 연간 회원권을 구매한 것이다. 워싱턴 시내에 차를 주차하거나 매번 주차료를 부담하는 것은 영국 런던 시내보다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느꼈던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지 밑바닥을 빨리 파악하는 데는 자전거가 최고다. 워싱턴에서 뮤지엄을 다니고 시내를 횡단하기에도 언제 어디서든 픽업하고 반납할 수 있는 공유 자전거가 딱이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헬멧 안에 흐르는 땀줄기를 느끼며 시내 차이나타운을 관통해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를 찾아갔다. 내셔널 갤러리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미 국회 의사당이 보였다.

 

신호등을 지나 내셔널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 앤드류 멜런(Andrew William Mellon, 1855~1937)의 초상 부조가 정면에 보였고, 그의 기증 사실과 기증 작품 목록 그리고 업적 등을 상세히 새겨 놓은 내용을 한참이나 읽고 그를 추념하고 경이를 바쳤다.

 

미국에서 내셔널 갤러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은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유럽 본토의 취향과 원전을 답습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것은 천박하고 키치스러운 형태로 나타났다. 게다가 1930년대는 대공황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국립 미술관이라고는 없었던 미국 워싱턴에 국가 차원의 미술관을 건립하는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앤드류 멜런이었다.

 

워싱턴의 National Gallery of Art. 이곳에서 미국 국회의사당을 마주볼 수 있다.

 

그의 대표 소장품 중의 하나인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는 작가가 죽은 후에 잊혀졌던 작품이었다. 이후 프랑스 디죵의 수도원에서 나타난 뒤에 네덜란드의 빌렘 2세를 거쳐 그의 사촌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 1세가 네덜란드 헤이그 경매에서 낙찰 받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되었던 작품이었다.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마찬가지로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련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소장품을 팔아 치우려 하자 미술품 소장가였던 앤드류 멜런은 이 <수태고지>를 소장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격 흥정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위적이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과 러시아의 모든 예술적인 유산을 모두 파괴하고 팔아 넘긴 스탈린에 의해 결국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 에르미타시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수장고에서 나와 미국에 있는 앤드류 멜런의 지하 창고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서 전시를 볼 때는 앤드류 멜런이 소장했던 작품의 여부를 같이 추적하면서 보는 것을 즐겨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과 초상화 중에서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중에서도,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의 기막힌 작품 중에서도, 인상주의 전시 섹션에서 클로드 모네의 작품 중에서도,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중에서도, 이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최고 작품들은 앤드류 멜런이 소장했던 작품들이었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가장 수준 높은 국립 뮤지엄에서 무료로 앤드류 멜런이 기증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질 수 있는 ‘개인’과 ‘소유’ 그리고 ‘자유’의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은 앤드류 멜런이 자신의 소장품들을 국가에 기증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를 미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웠고, 1937년 미 의회는 이를 수락하는 공동 결의안에 따라 미국 워싱턴에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로 건립된 것이다.

 

앤드류 멜런은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았지만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단 한 가지 조건만 부탁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뮤지엄이 소장하고 기증받게 될 작품들은 지금 자신이 기증하는 소장품(그림 126점과 조각 26점)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수준을 유지해 주기를.

 

미국은 국립 뮤지엄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유럽의 아류나 복제가 아닌, 자신만의 문화 유산과 전통 위에 연방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수준의 척도는 바로 앤드류 멜런이 소장했던 소장품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내셔널 갤러리를 나오는 길에 전국의 지방 정부와 사립 미술관들로 샅샅이 분해되고 익명화되고 정권의 전리품처럼 해체되어버린 이건희 회장 소장품이 떠올랐다. 슬프지도 않았다. 분노가 너무 커서.

 

그것은 주인집 양반의 안방과 곳간을 턴 노비들의 약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미래에 너희의 천박함이 스스로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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