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이야기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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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

 

-격조 높은 목판화·우끼요에가 걸린, 세컨드핸드가 아니라 ‘세컨드스토리’란 이름의 헌책방

-커피 맛이나 인테리어 때문만은 아닌… 매혹된 까닭을 2년쯤 지나서야 알게 될 듯한 카페

-직접 기른 농부들을 만날 수 있고 대형 마트에선 살 수 없는 신선함이 살아있는 로컬 장터

 

 

나의 사적인 도시 취향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우선 느낌 알고 교양 있으면서도 고집 있는 주인이 버티고 있는 헌책방이 있어야 하고, 느낌 알고 너무 시크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좀 차분한 카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낯선 도시라도 내가 쉬고 소요할 사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또 방해받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초대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나의 사적인 도시 첫 번째_(헌)책방 ‘세컨드 스토리 북’

자전거를 타고 뒤폰트 서클(Dupont Circle)로 이동해 은행(Bank of America)에서 계좌와 체크 카드를 개설했다. 은행을 나오니 갑자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져서 카페를 찾아 피(P) 스트리트로 들어섰고, 헌책방으로 보이는 쇼윈도에서 카탈로그 하나를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1998년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전시 <Edo: Art in Japan 1615-1868> 카탈로그를 팔고 있지 않은가? 순간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너무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 숨을 머금고 상점으로 들어가 저 쇼윈도에 있는 에도 전시 도록 좀 내가 볼 수 있을까? 하고는 은행에서 갓 만든 체크 카드로 50달러를 결제해 버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책방은 만만치 않아 보였고 점원들도 그래 보였다. 간판도 모른 채 흥분해 들어간, 내가 워싱턴에서 처음 들어간 이 헌책방에는 중간중간 걸려 있는 목판화와 우끼요에가 눈 밝고 격조를 좀 아는 이가 모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가격도 예사 수준이 아니었다. 일하는 점원들도 보통내기가 아닌 고수들로 보였다.

 

독일에서는 헌책방에 들어가면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정말 책을 사랑하고 교양이 있고 순수하게 저자와 문학과 예술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무림의 고수같은 주인들이 있었다. 그 대화가 즐거워 다 읽을 자신도 없던 페터 한트케의 <Kaspar>(카스파)나 권터 그라스의 두꺼운 <Die Blechtrommel>(양철북)을 사곤 했었다.

 

원래 한국의 헌책방도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고수들이 꽤 많았다. 미술 작품들도 헌책방에서 같이 감상하고 팔기도 했으며, 또 어떤 곳에서는 선수들이 모여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며 자기 소장품과 물건에 대한 품평도 함께 나누고 그랬던 커뮤니티 공간이 바로 헌책방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헌책방은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과거의 그 무엇으로 단절되어 버렸다.

 

1998년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전시 카탈로그.

 

영수증을 받으면서야 책방 이름을 알아챘다. <Second Story Book>. 세컨드 스토리 북이라… 그러니까 중고 서적을 판매한다면 세컨드 핸드여야 할 텐데 그게 아니라 세컨드 스토리라는 거지? 맞어! 누군가의 손을 탔다고 하기 전에 두 번째 이야기로 태어나는 거야. 마치 지금 전혀 새로운 곳에서 두 번째의, 세 번째의 재원으로 새로 불리워지는 것처럼 말이야.

 

이 책방은 앞으로 나의 워싱턴 생활에서 자주 가고 함께 가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또 많은 책들을 사게 될 은밀하고 사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나의 사적인 도시 두 번째_카페 ‘Emissary’

첫 날부터 너무 행복한 발견이 연이어지는 걸까? 책방에서 나와 몇 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이름의 카페가 보였다. 매혹적인 곳이 많이 없어서 그렇지 솔직히 나는 좀 냄새를 제대로 맡을 때가 많다고 자부한다.

 

저기 괜찮을 것 같은데? 매력적인 곳일 것 같은데? 하며 옮기는 걸음이 마침내 카페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매료되어 버렸다.

 

이유는? 커피 맛도 좋았지만 그렇다고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만도 아니었다. 이곳을 나의 사적인 카페로 결정해 버렸다! 자주 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나의 사적인 장소를 또 하나 갖게 된 것이다. 뒤퐁트 서클 피 스트리트에 있는 카페 <Emissary>이다. 아마 2년쯤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매혹된 이유를 말이다.

 

•나의 사적인 도시 세 번째_장터 ‘알렉산드리아’

워싱턴에서 둘째 날. 차를 사서 처음으로 드라이브한 곳은 워싱턴 D.C.에서 포토맥 강을 따라 11킬로미터 떨어진 식민지 시대 올드타운인 알렉산드리아였다. 몰랐었는데 간 날이 마침 장날이었다. 누군가는 올드하고 시골스러운 곳이라 하겠지만 나에겐 활기 넘치고 아름다운 로컬이고 골목이자 장터였다.

 

나의 사적인 도시에서 내게 가장 필요하고 활기 넘치는 현장은 바로 이런 장터이다. 앞으로 장은 알렉산드리아 장에 와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사 먹어야지. 직접 만져서 키운 농부들을 만날 수 있고, 대형 유통 체인망에서는 살 수 없는 신선한 것들이 있는 장터.

 

내 기준에서는 이것이 삶이다.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일깨워 주는 곳. 이런 곳이 나의 사적인 도시다.

 

https://www.facebook.com/JaewonChey.net/posts/424216133923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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