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무렵, 그 겨울의 남도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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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겨울 한파 속 대학 교지 편집진과 강진 다산 유배지, 보길도 고산 유적지 답사 4박 5일  

-굽이도는 황톳길 지나 땅끝에서 첫 전라도 음식 맛 봐, 동백 붉게 핀 아스라한 초당길

-누구에게나 스물 시절은 빛나는 법. 전장의 스물들도, 우리 젊은이들도 그럴 수 있기를

 

 

열네 살에서 7년을 건너뛴 1985년 2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85년도 교지 편집위원들이 선발 구성됐고, 교지 콘텐츠의 하나로 강진의 다산 유배지와 보길도의 고산 유적지 답사가 기획되었다. 당시 나는 “한가하게 그런 것이나 다룰 때냐”며 반대했지만, 편집장을 비롯해 나를 뺀 나머지 전원 찬성으로 4박 5일의 답사 기행을 떠났다. 다섯 남자에 홍일점.

 

대한을 전후한 시점으로 기억한다. 중부 지방에 몰아친 한파는 통일호를 타고 도착한 광주역의 추위로 이어졌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광주 시내 여관을 잡아 씻지도 벗지도 않고 쓰러져 잔 다음날 아침, 역 부근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해남행 버스를 탔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마난

제주 고깃배 얻어 타고 해남으로 나아갈 제

흥양에 돋는 해야 보성을 비추거라

고산에 아침 안개 영암에 둘렀어라

(후략)

 

한 잔 하면 호남가를 즐겨 부르던 함평 출신 편집장 선배는 육 척이 훌쩍 넘는 장신(190cm)에 손바닥이 우리들 손바닥 두 배가 넘는 거구였다. 그 선배한테 체육과 학우들이 엉겼다가 팔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막 덖어 낸 작설차 잎이 담긴 봉다리를 들고 벗에게 가던 초의 선사의 그 기분만큼은 아니겠지만.

 

 

편집장 선배의 금방 도착한다는 말만 믿고 광주터미널에서 해남행 시외버스를 탔는데, 먼지 풀풀 날리며 들길과 완만한 언덕길을 굽이도는 버스는 좀처럼 해남읍에 다가서지 못했다. 가는 길에 멀리 영암 월출산이 보이고, 넓다란 호수도 보였다.

 

보이느니 초가요, 멀리 들 언저리 언덕마다 정자더라.

 

아침 일곱 시 좀 넘어 출발한 버스가 정오를 훌쩍 넘겨 오후 1시경에 후즐근한 시골읍 종점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당연히 고픈 배부터 달래려 했는데, 편집장 선배가 버스 시간표를 보더니 토말행 버스가 바로 있다며 밥 먹을 시간이 없단다.

 

“그러지 말고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갑시다” 했더니 막차란다. 이런 제길! 보길도 가려면 토말 가서 배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기도 해야 한단다.

 

짧은 겨울해가 다 저물어서야 도착한 토말. 배편은커녕 그런 것 자체가 없다고 어부가 알려준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대한 추위가 남해 바다마저 얼릴 기세인데, 배편은 없고 거구의 선배한테 “뭘 알고 나온 거냐”는 타박이 줄을 잇는다. 선배는 싱거운 웃음을 흘리며 배부터 채울 곳을 찾자고 한다.

 

지금이야 ‘땅끝’이라고 해서 관광 명소가 됐지만 당시 ‘토말’은 말 그대로 한적한 반농반어의 시골 동네. 그마저도 군데군데 떨어진 민가를 찾아다니며 하룻밤 숙식을 구걸하는 신세였지만, 두 번짼가 세 번째 집에서 행랑채 비슷한 방 하나를 내주며 묵어가라고 한다.

 

얻어먹은 처지에 이리 말하는 게 그렇지만, 난 전라도 음식이라고 해서 다 맛있는 게 아닌 걸 그때 알았다. 아니, 당시까지 전라도에 가 본 적 없던 처지에 말로만 듣던 전라도 음식맛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뭔 음식이 그리도 짜고 비리던지. 암튼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 환대에 쐬주까지 거나하게 한 잔 하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다급히 깨웠다. 마침 골재를 싣고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다가 말고 씻기는커녕 하룻밤 재워 준 양주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고깃배 선창으로 달려가 골재 운반선에 올라탔다.

 

그렇게 노화도를 거쳐 보길도에서 1박 하고 강진으로 가 두륜산(대둔산)에 올랐다. 하산길, 대흥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주막집이 있어 들렀다. 우리밖에 없는 주막집에 미모의 여주인이 술시중을 들며 거구 선배에게 한 자락을 권한다. 선배는 예의 “함평 천지 늙은 몸이~”를 불러제끼고 나서 주모한테 권주가를 청한다. “쑥~대 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으 차-안자리여…”를 불러제끼며 주모가 화답한다.

 

동동주를 마시고 내려가는 길, 홍일점 그녀가 한 잔한 발그레한 얼굴로 “으 추워라. 안아 주는 사내 하나 없고…” 하기에 흠! 내가 총대를 멨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 다산 초당으로 갔다. 산기슭 오솔길 옆으로 동백이 붉게 피어 있는 꾸밈없던 초당길은, 막 덖어 낸 작설차 잎이 담긴 봉다리를 들고 벗에게 가던 초의 선사의 그 기분만큼은 아니겠지만, 겉멋에 한창 들떠 있던 갓 스물 넘긴 대학생의 추억과 낭만이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누구에게나 스물 시절은 빛나는 법이다. 전장의 스물들에게도. 지금 우리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고,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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