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8월 23일 열린 ‘발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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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89년 8월23일 소련 치하 발트 3국 200만 명, 620㎞ 인간 띠로 잇고 “자유를 달라” 외쳐

-북·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는 ‘비밀 합의’ 포함한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체결 50주년

-발트 3국은 1991년 8월에 소련에서 가장 먼저 독립 쟁취.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해체

 

 

발트 3국을 여행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바닥에서 동판 하나를 보았다. 두 개의 발바닥 부조 밑에 ‘발트의 길 1989.8.23. 탈린 · 리가 · 빌뉴스’라고 적혀 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 구시가지 입구의 ‘발트의 길’ 동판.

 

1989년 8월23일 오후 7시 소련 치하에 있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200여 만 명은 세 나라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 620㎞를 인간 띠로 잇고 “자유를 달라”고 15분간 외쳤다.

이 날은 1939년 8월23일 ‘독일과 소련 불가침조약’ 체결 50주년이었다.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북·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기로 하는 별도의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부,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약 체결 후 독일은 9월1일에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소련은 9월18일에 폴란드 동부를 침공했다. 이는 ‘독소 비밀의정서’에 따른 것이었다. 이어서 소련은 1940년 6월에 발트3국을 소련의 영토로 만들었다.

1988년에 ‘독소 비밀의정서’가 처음 공개되자 발트 3국 국민들은 분노했다. 1989년 5월에 에스토니아 인민전선, 라트비아 인민전선, 리투아니아의 사유디스와 같은 발트 민족운동세력들은 ‘발트 총회’를 창설하고 소련 정부에 불법 점령 사실을 인정하고 독립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6월15일에는 발트3국의 민족 운동가들이 연합하여 소집한 페르누(Paernu) 회담에서 ‘발트의 길’이 제안되었고, 3국 운동가들 사이에 공식적 합의와 서명이 이루어졌다. 그 서명 장소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있는 시그니쳐 하우스이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시그니쳐 하우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고 세 나라 국민이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참여할지도 미지수였다. 더구나 이를 저지하려는 소련의 무력 침공도 걱정이었다.

 

실제로 행사가 열리기 8일 전인 8월15일에 러시아 <프라우다> 신문은 ‘발트3국에서 계획하고 있는 불법행위를 금지한다’는 기사를 냈고,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소련에 지원 병력을 내어주기로 약속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발트의 길- 인간 띠 잇기 행사’는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발트 3국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주요 도로변에 손에 손을 잡고 국기를 흔들며 자유를 외쳤다.

 

하늘에는 민간비행기가 선회하며 역사적 장면을 촬영했고, 이 행사는 전 세계로 중개되었다. 한국도 8월2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발트 3국, 소련에 독립 요구하는 인간 사슬 시위’를 보도했다.

 

이렇게 자유를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인 ‘발트의 길’은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발트의 길 행사가 있은 두 달 후인 11월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서독의 자유왕래가 시작된 것이다.

 

이어서 12월25일에 루마니아 차우체스쿠 대통령이 처형됨으로써 동유럽의 자유화물결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1989년 12월 소련도 인민 대의원 총회에서 1939년의 비밀 조항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했다.

 

한편 1989년 6월 폴란드 의회 선거에서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자유노조는 압승을 거두었고, 1990년에 바웬사는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또한 1990년 10월3일에 독일이 통일되었다.

 

‘발트의 길’ 행사 당시의 사진.

 

이런 자유화 물결에 발트 3국은 1991년 8월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고, 마침내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되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 ‘발트의 길’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기네스북에 올랐다. ‘발트의 길’은 자유 · 평화운동의 모델이 되었는데, 2004년에는 대만에서 2.28 학살(1947년 2월28일 장개석 정부가 대만 현지인 2만여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한 사건)을 추념하는 대규모 인간 띠 행사가 열렸고, 우리나라도 판문점선언 1주년이 되는 2019년 4월27일에 ‘DMZ 인간 띠잇기 행사’를 하였다.

 

금년 8월23일은 ‘발트의 길 30주년’이다. 발트 3국이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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